초록은 점점 녹이 슬어도
따스했던 봄날의 환영을 기억해
나는 오월의 아이
포크밴드인 랄라스윗의 ‘오월’이라는 노래다. 랄라스윗이 찬미하는 5월은 찬란한 봄이다. 5월이라는 달이 가지는 느낌은 이렇다. 조금이나마 잔존하던 겨울의 한기가 말끔히 청산되고, 새잎은 무성하게 우거지며 들녘의 사방에 생명이 움트는, 어린이들은 존재로서 축하받고 자녀를 둔 이들은 부모로서 감사받는 달, 학생들은 칠판에 갖은 감사의 낙서를 적어둔 채 스승의 은혜를 목청껏 부르고 선생님은 멋쩍어하면서도 돈독한 사제의 연에 감사하는 달일 테다.
그런데, 뜻하는 바는 같을 테지만 ‘오월’이라는 글자는 나를 흠칫 놀라게 한다. 오월은 더 이상 푸르거나 행복하지 않다. 스산함이 감도는 끝에 함성과 총성이 맞서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휘몰아친다. 오월이라는 텍스트로 그 때를 기리기 때문일지 모른다. 오월에 광주광역시 대학들의 축제가 없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랄라스윗의 ‘오월’이 내게 탄생의 찬미가 아닌 처연한 민중가요로 다가오는 까닭도 이와 같을까. 내게 오월은 숭고와 비통 사이의 어딘가에 자리해 있다.
10월 14일, 광주평생교육진흥원의 임직원 일동은 오월 항쟁의 최후 항전지인 옛 전라남도 도청(現 ACC 민주평화교류원)에 모였다. 지역의 대표적 복합문화기관인 ACC와 전일빌딩245의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함이었다. 4시간여 계획된 투어의 첫머리에 말쑥한 차림의 해설사 한 분이 우리를 옛 도청의 정문으로 인솔했다. ACC 민주평화교류원은 1930년에 건립되어 광주의 중심 광장에 고고하게 자리 잡은 백색 건물이다. 100년이라는 세월동안 낡고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붉은 벽돌이 슬그머니 보이기도 했지만,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 아래에 서니 그 모습이 노익장처럼 당당했다. 비록 일제강점기에 지어졌으나 한국인 건축가인 김순하 씨가 설계와 시공 과정에 참여해 완성시킨 자못 주체적인 의미를 가진 건물이다.
해설사는 아쉽지만 오늘 민주평화교류원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한다며 대신 그 앞뜰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이 앞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는 하얀 광장은 역사적 의미가 깊은 518민주광장이다. 그 가운데 교과서에서도 봤던 큼직한 분수대가 자리하고 있다. 내가 어릴 적엔 이 분수대를 중심으로 아주 큰 회전교차로가 있었다. 바쁜 자동차가 차지했던 공간이 지금은 사시사철 여러 행사를 소화하며 광주 시민들을 다시금 한데 모이게 하고 있다.
민주평화교류원을 등 뒤에 두고 시선을 멀리 옮기면 충장로 쪽으로 향하는 광장의 가장자리에 시계탑이 위치해 있다. 1971년 도청 앞에 세워진 이 시계탑은 오월 항쟁 이후 농성광장으로 옮겨졌다가 2015년에 현재 위치에 돌아왔다. 몇 톤은 가볍게 뛰어넘을 법한 이 시계탑을 왜 이리저리 옮겼던 것일까? 광주에 시계탑이 몇 개 없는 까닭에 농성광장에 빌려줬던 것일까? 이 기막힌 외출의 발단이 된 건 ‘시계탑은 알고 있다’는 기사였다. 오월 항쟁에 대한 왜곡된 보도 일색에 반기를 든 독일 기자가 시계탑을 목격자에 비유해 진실을 알리는 기사를 쓰자, 당시 신군부는 한밤중에 그 ‘목격자’를 범죄 현장에서 서둘러 치워버린 것이다. 제자리에 돌아온 목격자는 매일 17시 18분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한다. 그 송가는 아직도 금남로 전역에 애달프게 울려 퍼진다.
해설사는 ACC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우리를 인솔했다. 한 계단씩 밟아 내려가던 중, 해설사가 뒤를 돌아보더니 “왜 아시아문화전당은 지상에 있지 않고 지하에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조경을 위해서, 여름에 시원하려고, 개성적인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등의 여러 대답이 튀어나왔다. 해설사는 그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가장 중앙에 옛 전라남도 도청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도청 뒤쪽으로 높은 건물을 세우면 도청은 거대한 건축물에 압도당하는 모양새가 된다. 미관상으로도, 역사적 의미로도 좋지 않다. 반면 땅을 파내서 지하에 건물을 지으면 도청을 중앙으로 광장이 조성되고 근방의 어디서든 옛 도청을 볼 수 있다. 또, 건물을 지하로 지었기 때문에 전당의 가장 꼭대기에 도청이 자리하게 된다. 아시아문화전당 각 건물의 지붕은 시민들이 거닐 수 있는 공원이 된다. 옛 전라남도 도청의 의의를 드높임과 함께 시내 한복판에 시민의 광장과 시민의 공원이 생겨난 것이다.
이어 문화정보원으로 이동했다. 문화정보원은 아시아문화전당에서 문화교육, 도서관, 컨퍼런스 , 문화전시 등의 다목적으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쭉 둘러보며 이동하는데 여러 독특한 분위기의 열람실 좌석에 방문객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각자의 일에 열중하는 모습이 이국적이었다. 열람실 뒤쪽으로는 통유리로 된 벽이 있었고, 그 사이엔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었다. 해설사는 우리를 그쪽으로 이끌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휴게실 같았다. 지하인데도 대나무와 같은 여러 초목이 자라고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파란 하늘이 보였다. 지붕이 되는 부분이 모두 유리로 되어있어 자연광을 채광하고 있었다. 햇빛이 은은하게 안으로 스며들어와 지하임에도 답답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해가 지면 반대로 건물 안의 빛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면서 어두운 공원을 은은하게 비춘다고 한다. 건축 설계 콘셉트가 ‘빛의 숲’이라는데, 건축물 안에서도, 옥상의 공원에서도 빛의 숲을 온전히 누릴 수 있어 보였다.
ACC 투어의 마지막 공간은 문화창조원이다. 미디어 아트를 중심으로 여러 문화예술 작품의 전시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투어 당일에는 융복합 콘텐츠 전시인 ‘지구의 시간(The Great Chronicle with Earth)'이 진행되고 있었다. 과거 지구가 변화해온 기억들과 자연의 순환, 그리고 인류세에 들어서 그 순환이 어긋나고 파괴되는 것을 연대기로 구성한 전시다.
대형 LED 게이트를 지나자 거대한 홀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구의 연대기의 출발점인 ‘물의 순환’이라는 작품이다. 비를 의미하는 거대한 led 샹들리에가 천정에 매달려 있고, 바닥에는 거대한 물의 구(球)를 프로젝터로 형상화했다. 관람객들은 샹들리에와 물의 구가 자아내는 앙상블을 경이로워하며 구경할 수도 있지만, 태초의 생명이 그랬던 것처럼 거대한 물의 구 안에 직접 뛰어들 수도 있다. 관람객이 남기는 발자국마다 물결이 되어 널리 퍼지는데, 관람객이 늘어날수록 수면이 새로운 파동으로 가득 메워진다. 이 파동은 관점에 따라 생명의 박동으로 보이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구의 구석구석을 너저분하게 더럽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구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했을 때야 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파동 앞에서 자랑스러울 테다.
‘물의 순환’이 수면을 내려다보는 작품이라면, 하늘을 우러러보는 작품도 있다. 지구에서 바라보는 주야의 순환을 통해 천체의 움직임을 조망하는 작품인 ‘One day’다. 관람객은 암실의 둥근 소파에 누워서 단차 없이 이어지는 영원한 하루의 반복을 감상한다. 내게는 당연한 24시간 주기의 자전이 46억 년간 반복되어 왔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겸허한 마음과 함께 심신이 편안해진다. 이외에 다른 인상적인 작품들도 많았지만, 구구절절 설명해봐야 불여일견이라 이만 줄이려 한다, 이번 ‘지구의 시간’ 전시는 11월 6일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지만, 아시아문화전당은 큰 공백 없이 다음 특별전시도 기획하고 있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며 그 감동을 꼭 쟁취하시라.
다음 투어의 목적지는 전일빌딩245다. 전일빌딩은 1968년에 건축되어 전남일보 사옥으로 사용되다 1980년에 이르러 옛 전라남도 도청과 함께 오월 항쟁의 시민군 최후 항전지가 되어 역사로 남았다. 옛 전남일보는 동년 시행된 강제적 언론 통폐합 조치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후신인 광주일보가 나중에 터를 잡았지만, 건물 노후화로 인해 정든 전일빌딩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노후화되어 철거 위기에 몰린 전일빌딩은 사적지로써 가치를 인정받아 리모델링을 통해 ‘전일빌딩245’로 재탄생하게 된다.
건물 이름 뒤에 붙은 245라는 숫자는 전일빌딩245의 건물 번지수임과 동시에 역사적 증거의 보존이기도 하다. 계엄군의 군용 헬기인 UH-1H가 빌딩 내부에 피신해있던 시민들을 향해 M60 기관총을 무차별 난사한 끝에 증거로 남아 발견된 탄흔이 245개이다. 현재는 더 많은 탄흔들이 발견되어 270개에 이른다.
이를 추념하기 위해 전일빌딩245의 9층과 10층에는 오월 항쟁 기념관이 마련되어 있다. 기념관에 초입에는 특징적인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방문객에게 총알이 쏟아지는 듯한 구조물이다. 이 구조물을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가슴이 조이고 불안감이 드는데, 전일빌딩 헬기 사격 사건의 끔찍함을 방문객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라고 한다. 헬기 사격의 전후사정에 대한 애니메이션도 상영한다. 항쟁 당시 시내 곳곳에서 군용 헬기가 목격된 사례, 헬기가 출격한 군 기록을 바탕으로 신군부의 헬기 사격에 대한 부정에 대한 반박이다. 또, 가상현실(VR) 디바이스를 착용하고 헬기 사격 사건을 직접 체험해볼 수도 있다.
자료를 보고, 해설사에게 설명을 듣는 것도 좋지만, 이 날의 참상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빌딩 안으로 빗발친 잔인한 증거를 직접 목도하는 것이다. 전일빌딩245의 10층에는 항쟁 당시 건물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탄환의 흔적들이 콘크리트 기둥과, 천장과, 바닥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마치 방금 전쟁이 벌어진 듯하다. 군의 기관총 난사의 과녁이 동료 시민이었다는 것이 재차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로써 우리의 일정은 끝났다. 전일빌딩245의 해설사는 한 층을 더 올라가 옥상의 ‘전일마루’에 방문하길 권했다. 옥상에 나가 바람을 맞으니 답답했던 가슴도 좀 풀리는 듯 했다. 금남로 시내와 ACC가 한눈에 다 보였다. 42년 전에 이 옥상에서 시민군이 농성했을 것이다. 나는 가만 눈을 감고 당시 그 날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다시 가슴이 답답했다. 그러나 42년 후의 광주는 그 날의 아픔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픔을 간직한 옛 도청과 전일빌딩은 ACC와 전일빌딩245라는 이름으로 광주의 문화를 꽃피우고 있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선 끝에, 시민이 즐겨 찾는 나들이 코스이자 대표적 복합문화시설이 되어있었다.
태국의 예술가인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가 2020년 광주비엔날레에서 공개해 화제를 모은 단편영화인 <죽음을 위한 노래>는 감독의 할아버지의 죽음에서 서사를 전개한다. 할아버지 개인의 죽음, 개인의 죽음과 공동체적 죽음, 태국 민주화 운동과 홍콩의 노란 우산 시위, 제주 4·3 사건까지 동아시아의 굵직한 사건들을 훑어 내리던 감독은 결국 개인과 공동체의 서사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 문화가 매개체로서 역할해온 것을 강조한다. 문화는 시민들 사이의 의식을 공간적으로 잇고 과거와 미래를 시간적으로 잇는다. 지리산 서부에 살던 사람들의 정한(情恨)은 역사의 시간을 거쳐 서편제라는 판소리로 승화되었다. 유대 민족 박해라는 공동체의 정한은 역사의 시간 끝에 출애굽기라는 불멸의 서사시로 영원히 남았다. 어쩌면 ACC와 전일빌딩245도 그런 과정을 거치는 중이 아닐까. 상흔이 문화로 승화되는 시간에, 나비가 되기 위한 번데기의 시간에 있는 것은 아닐까.
ACC투어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홈페이지(www.acc.go.kr)에서 별도의 비용 없이 예약할 수 있다. 전일빌딩245해설은 예약 없이 현장 신청이 가능하다.
- 방세윤
- 광주평생교육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