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현실에도 있는 우영우 이수현 | 푸른솔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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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저거 우리 연우랑 똑같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이 타인과 악수를 할 때, 손가락만 소심하게 잡았다 떼는 모습을 보고 남편과 나는 폭소를 터뜨렸다. 포옹을 불편해하는 우영우의 모습이 안아주려 하면 엉덩이를 쭉 빼고 밀어내는 우리 딸과 꼭 닮았다. 그 외에도 남들이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과하게 놀라는 표정, 즉각 반향어를 하다가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 어색한 손동작, 껑충거리는 듯한 걸음걸이는 나에게 아주 익숙한 모습이다.
자폐적 특징을 여실히 드러내는 이런 특성들은 한때 내가 무척 싫어했던 딸의 모습이다. 가능하면 소거시키려고 애썼다. 우영우와 같은 이런 모습들이 심해지면 아이의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아 불안했고, 조금이라도 사라지면 아이가 성장했다고 여겨 기뻐했다.

자폐성 장애가 있는 딸의 특징이 비장애인이 주류인 세상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장애인들은 딸의 자폐적 특성에 당황하고 불편해한다. 안아주려고 다가가면 밀어내는 모습, 악수를 하면 재빨리 손을 빼내려 안간힘을 쓰는 딸의 모습에 당황한다. 자신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거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면 불편해한다. 엄마인 나도 딸의 이런 모습들이 예쁘지만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나도 덩달아 안절부절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선과는 다르게 드라마 속 우영우는 사랑스럽게 묘사되었다. 현실 세계에서 비장애인과 달라 눈총을 받는 특이한 행동도 드라마가 귀엽고 사랑스럽게 녹여내는 것이 감탄스러웠다. 자폐인 자녀를 둔 나마저도 마뜩하지 않았던 행동들을 이토록 매력적으로 그려주다니 정말 고마웠다. 아이가 어떤 특이한 행동을 하든, 장애를 떠나 사람 그 자체로 인정과 존중을 받아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드라마였다.
그런데 과연 우영우를 사랑하는 대중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우영우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속상해하던 시청자들이 과연 주변의 장애인들이 현실에서 경험하는 차별에 안타까워하고 있을까?

얼마 전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대중들이 보였던 반응을 기억한다. 30분 지체된 자신의 출근길 때문에 30년 이상 이동권을 박탈당한 장애인들의 울부짖음에 냉소와 비난을 퍼붓던 승객들의 모습에 경악했다. 그들에게 우영우는 자신의 삶에 조금도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움을 주니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고, 지하철 시위는 당장 나를 불편하게 하니 응징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영우의 반향어나 말투는 귀엽다고 흉내까지 내면서, 식당에서 독특한 말투로 말하는 우리 딸은 이상한 눈으로 힐끔힐끔 쳐다본다. 현실 속 장애인에게는 관심도 없는데, 드라마는 한편도 놓치지 않고 열광하는 모습에서 대중의 이중성과 미디어의 한계적 속성이 드러났다.

의미있는 선물


내가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점은 아이의 장애 자체가 아니었다. 물론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지만, 아이는 아이만의 속도로 성장해 가면서 순간순간 기쁨을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아무리 아이를 사랑과 정성으로 키운다 해도 집 밖으로 나가면 내 아이는 이 사회의 천덕꾸러기일 뿐이었다. 가까운 놀이터를 가는 것도 여전히 쉽지가 않다. 독특한 말과 행동을 하는 내 아이를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슬금슬금 피한다. 어떤 엄마들은 아예 자기 아이를 우리 아이 옆에 접근도 못하게 한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조금 느리거나 튀는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참여시켜주지 않는 학교 행사, 아이가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고 지레 평가하는 교사들, 학교와 교사로부터 자연스럽게 차별과 배제의 마음을 배우는 학생들······.

우영우는 법정에서 자신이 자폐성 장애를 가졌다고 당당히 말하며 양해를 구한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자폐적 특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점차 우영우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간다.

나는 우영우가 자신의 장애에 관해서 당당히 말할 때마다 내 아이의 장애를 외쳐야 했던 수없는 날들이 떠올랐다. 영화 <말아톤>에서 대중이 눈물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던 대사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는 장애인의 엄마라면 누구나 일생 동안 수백, 수천 번 하게 되는 말이다. 그러나 우영우와는 다르게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닐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화 속 초원이의 엄마가 20년 동안 죄인처럼 살았다고 말했듯, 마치 죄인이 용서를 구하듯 해야 하는 말이다. 과연 무엇이 초원이와 엄마를 죄인으로 만들었을까?

드라마 속 우영우처럼 내 아이에게도 자연스럽게 친구와 이웃이 생길 수 있을까? 우영우처럼 근사한 직업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하며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는 날이 올까? 자신의 장애를 죄인이 용서를 구하듯이 아닌, 어깨 펴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런 날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 걸까?

나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누구나 이 땅에서 소중한 존재로 존중받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그런 사회는 장애인들이 만나는 제한된 사람들, 가족, 치료사, 의사, 교사뿐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영우와 같은 드라마를 통해 대중의 인식을 조금씩 바꾸어가는 것도 좋겠지만, 좀 더 현실적인 인식개선의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우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한다. 통합교육을 통해 학교에서 학생들이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만나지만, 물리적 통합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다. 시스템을 보완하고 통합교육 보조 인력을 확충하여 실질적 통합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교육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장애인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장애인 의무 고용제가 있지만, 미이행 업체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라 좀 더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일반 시민들은 평생교육기관을 통해 누구나 장애인을 만나고 자연스럽게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면 좋겠다. 교육의 기준을 비장애인에게만 맞출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평생교육 프로그램도 많아지기를 바란다.

“하하하, 우리 연우가 직장 잘 다녀왔어.”

드라마 속 우영우를 보고 웃던 남편과 내가, 이런 대화를 하며 웃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자폐성 장애가 있는 우리 아이도 드라마의 우영우처럼 직장 동료들과 환하게 웃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수현
경기도 김포시 푸른솔 중학교
학력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학사
- 서강대학교 영어교육과 석사

경력
- 번역 프리랜서
- 2008~현재. 중등영어교사

저서
- <해 보니까 되더라고요> (공저)
- <누가 뭐라든 너는 소중한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