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의 책 <팩트풀니스(Factfulness)>에서는 전 세계 국가를 소득 수준에 따라 1~4단계로 나눈다. 최종 4단계에 속한 한국은 이웃 국가들보다 북유럽 스웨덴 국민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더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지리·공간적 인접성에 따라 동일한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전통적 지역성의 개념은 점차 약해지고, 소득·가치관·취향·라이프스타일 등이 그 자릴 대체하기 시작했다. 실제, MZ 세대는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가입한 온오프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결’만 맞으면, 국내외 어디든 찾아가 현지인처럼 살고, 찐 로컬 감성이 담긴 공간과 음식에 열광한다.

로컬 콘텐츠도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로컬을 대신해 로컬의 고유성(Origin)을 어떤 취향과 라이프스타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창작·향유 주체가 확장 또는 변형된다. 노래 ‘제주도 푸른 밤’은 제주를 치유와 휴양의 섬으로 규정함으로써, 전 국민을 ‘제주’로 소환했고, ‘임을 위한 행진곡’은 세계 민주화 운동가들의 ‘제2의 고향’으로 광주를 호명한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유행의 확산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역의 문화유산(Heritage)를 새로운 재미와 경험의 보고(寶庫)로 소비하는 경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처럼, 변화된 트렌드에 맞게,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을 ‘로컬 크리에이터(local creator)’라고 한다. 이들은 AR 기술로 ‘지역 설화’를 되살리고, 쇠락한 조선소를 원형 보존해 ‘복합 문화 공간’으로 만든다. 양양 해변의 특성을 살린 ‘서핑 전용 해변’, 제주 해녀의 삶을 담은 공연을 관람하며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정겨운 사투리로 만든 문구용품도 모두 이들의 작품이다.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이들을 찾아 지역을 방문하고, 그 안에 담긴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한다. 이게 로컬 콘텐츠의 新 소비 방식이다.

로컬 크리에이터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 있다. 미국 서북부 오리건 주(州) 포틀랜드이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는, ‘Keep Portland Weird'이다. ‘포틀랜드다움을 계속 간직하라’는 뜻이다. 그만큼 지역 정체성이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도시 주요 광고판에서 ‘Local'이란 단어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로컬=명품’, ‘주류 문화에 대항하는 대안 문화’의 뜻으로 쓰이는데, 포틀랜드 시민들은 ‘로컬 (자)부심’ 아래, 나이키로 상징되는 아웃도어 문화와 잡지 ‘킨포크(KinFolk)’에서 파생된 미니멀 라이프를 전 세계로 확산시켰다.

반면, 광주 시민들은 ‘광주다움’을 쉽게 정의하지 못한다. 지역의 역사, 문화를 배울 기회도 부족했고, 서울을 따라 하기에 바빴다. ‘5.18’, ‘무등산’, ‘아시아문화중심도시’처럼 숭고하고 추상적인 무엇으로 여기는 경향도 있다. 진정한 ‘광주다움’은 취향과 관심사가 제각각인 ‘나’들의 평범한 일상을 긍정하고, 그 가운데 형성된 라이프스타일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보통의 존재들이 만들어낸 소소하지만 다채로운 ‘광주다움’을 유무형의 콘텐츠로 표현한다면,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고 특별해질 것이다. 로컬 콘텐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광주평생교육진흥원’이 ‘광주다움’을 만들어가는 소통과 학습의 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