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돌씨의 기록 Ⅲ 지우개와 커터칼이 없다면 나는 만화를 그리지 못 할 것이다. 김길남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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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너는 중․고등학교에서 지리교사로 근무하다 퇴직 후 웹툰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길남 웹툰 작가의 연재 코너입니다. 김길남 웹툰 작가가 운영하고 있는 광주사랑 블로그(https://blog.naver.com/yeisee)에는 광주의 역사, 문화, 인물 등 다양한 이야기가 4컷으로 그려진 만화와 함께 담겨 있는데요. 퇴직 이후 열심히 수집한 광주에 대한 자료의 핵심만 쏙쏙 뽑아 만화로 제공한 광주 사랑 이야기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광주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광주평생교육 웹진 「무돌씨의 마르지 않는 샘」을 통해 연재되는 김선생의 광주사랑!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이번 주제는 "지우개와 커터칼이 없다면 나는 만화를 그리지 못 할 것이다."입니다.

<편집자 주>

지우개와 커터칼이 없다면 나는 만화를 그리지 못 할 것이다. 맞다. 수없이 고치고 지우고 다시 그리고 또 칼로 오려낸 끝에 겨우겨우 네 칸 만화 한 컷이 완성된다. 그림만 손대는 것은 아니다. 말풍선도 수시로 바꾼다. 글자도 맘에 들때까지 반복해서 고친다. ㅂ자가 들어간 대화에서 ㅂ자의 가운데가 새카맣게 되어도 칼로 오려내고 다시 쓴다. 생각했던 대로 완성이 되었더라도 인물의 두상이나 표정이 어색하면 자연스럽게 보일 때까지 고친다. 심지어는 말풍선이 너무 답답하게 보일 때에도 칼로 오려내고 다시 그려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럴 시간에 새로운 만화를 그렸다면 훨씬 더 많은 작품을 그렸을 것이 틀림없다.

6년하고 3개월이지나는 사이에 날짜로 치면 2,280일 동안에 그린 작품은 478컷. 한 컷을 그리는데 평균 4일 하고도 18시간을 투자한 셈이다. 120일 동안에 한 컷도 그리지 못 한적도 있다. 사실 나는 몇 달이라도 놀다가 그림이 될 때 집중해서 만화를 그려왔다. 2021년만 하더라도 12월에는 17컷을 그렸다. 이틀에 한 컷을 그리는 속도였다. 손에 안 잡히면 몇 달도 그냥 흘러보내고, 시동이 걸리면 몰아서 그린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만화를 그리는 것이 좋기는 하겠는데, 나는 원체 게으르다. 블로그, 페이스북, 카카오톡을 열어보는 데 드는 시간만도 엄청날 정도다. 닥치는대로 책을 보고, 신문을 보고, 유튜브를 본다. 넷플릭스 영화도 본다. 무슨 계획같은 건 없다. 피곤하면 아무때나 드러눕는다. 대신 항상 책 속에 눕는다. 서재가 곧 침실이긴 하다. 이렇게 대책없이 지내다 보면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방임에 가까운 시간 관리(이것도 관리라고 한다면)가 나의 창작을 위한 필요 조건일까?

이틀에 한 컷. 이렇게 해 보고도 싶지만, 내키지 않는다. 이렇게 8년 넘게 지나왔는데, 타이트하게 한다고 해서 잘 될까? 영어회화도 내킬 때만 하고있는데... 앞으로도 이렇게 편하게 가는 것을 유지하고자 한다. 자신을 닥달하지 말고 주욱 가자. 그냥 가자.

6년을 버텨왔다면 실적을 떠나서 성공했다고 평가해도 좋지않은가? 그 누구의 도움을 받는 일도 없이 나 혼자서 여기까지 왔다! 이런 속도로 6년을 더 가면 나는 광주만화를 무려 1,000컷을 그리게 될 것이다! 1,500컷을 그리겠다고 다그치다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게 될 수도 있다! 천천히 가자. 대신 늘 주제를 찾고 구상하는 일을 쉬지 말자. 한땀 한땀 모든 정성을 쏟아붓기로 하자. 미켈란제로는 10년 동안 시스티나 성당 벽화를 그렸다고 하지 않는가! 나도 그런 자세로 가는 게 맞다. 그동안 잘 해 왔으니, 앞으로도 잘 할 수 있다.

쥴리, 윤도리, 중산정담은 적당한 선에서 퇴출시키자. 소모적인 관심은 제어할 필요가 있다. 강건너 불이나 먼 산에 진달래는 그냥 놔두고, 내 할 일을 하자. 놀더라도 다른 주제를 찾는 것이 낫다. 2022. 1. 1. 오후 6시 19분에 김길남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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