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 광주의 봄은 잔인했다. 1960년 4·19 광주학생의거,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광주의 학생들이 광주의 시민들이 민주화의 성전에 목숨을 바쳤다.
광주의 희생과 항쟁으로 찾은 민주주의가 오늘의 우리 민주주의다.
광주항쟁을 취재한 월스트리트 저널 노먼 소프 기자는 ‘앞 세대가 자유 선거를 확립하고 민주주의를 꽃피려고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지금의 젊은 세대는 배우고 진심으로 감사하길 바랍니다’ 고 말한 바 있다.
외신기자였던 그의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라는 표현에 깊은 떨림이 있다. 그것은 옛날도 지금도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살상이고 트라우마였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지금 잊고 있다. 내 젊은 20대에 4·19를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처럼 다시 42년이 지난 5·18을 가슴에 꺼내 오기엔 너무 멀어진 시간이었을까.
2022년 5월, 역사는 민주주의 시계의 태엽을 뒤로 되감은 듯하다. 아마도 광주시민을 ‘반지성주의자’로 생각할 그들의 시작을 바라보는 광주의 봄은 허탈하다.
그동안 광주의 젊은이들은 ‘광주의 복합쇼핑몰’을 꿈꾸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중년 세대도 오늘의 세대들 모두도 민주주의 역사에 감사 대신에 눈에 보이는 이익에 마음 공간을 내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계절의 여왕인 찬란한 봄 앞에서 모란이 지고 말아 한해를 잃은 영랑 시인의 서러움처럼 광주의 봄은 우울하고 무겁다.
그러나 광주의 봄 시민들은 다시 빛고을의 광장에 모일 것이다. 그리고 노래를 부를 것이다. ‘무등산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 무엇이 두려우랴 함께 나가자’를 노래하며 서로를 북돋울 것이다.
그리고 자유를 노래하던 수많은 친구가 불세출의 가수 김연자의 ‘무조건 광주로’라는 노래처럼 ‘사랑을 위해 사랑을 찾아 무조건 광주로’ 찾아올 것이다.
호남은 항상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삶과 역사를 ‘한(恨)’으로 담아 끝내 희망을 만들어 낸다. 그 한에 담은 희망이 의(義)를 실현하는 용기 있는 시민 정신을 만들어 내고, 예(藝)로 승화되는 고매한 인간 정신을 창조하여 다른 도시들에서는 찾기 어려운 아니 전혀 새로운 느낌이 들게 하는 광주 사람들만의 문화, 의향 예향으로 상징되는 광주 정신이 된다.
전남 진도 사람들은 초상집에서도 ‘진도 아리랑’ 노래를 부른다. 흥겨운 노랫가락에 미친 짓처럼 보이는 관찰자들의 생각은 그들이 죽은 자들을 얼마나 슬피 보내는지, 그리고 살아 있는 자들 간에 얼마나 서로 힘을 북돋우는지를 그 상가 속의 하룻밤을 보내고서야 이해하게 된다.
‘슬픔을 위하여/슬픔을 이야기하지 말라/오히려 슬픔의 새벽에 관하여 말하라’(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시인의 시어처럼 광주는 슬픔을 기쁨으로 비극을 희극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전환하는 ‘한’이 바탕이 된 광주 정신을 갖고 있다.
나는 대선 직후 ‘시지프스 오아시스, 새로운 호남’이란 제목의 한 언론 칼럼에서 ‘광주와 호남인은 시지프스 신화처럼 민주주의 혹은 호남의 소망을 풀기 위해 끊임없이 역사의 바위를 정상에 올린다. 그러나 호남의 바람은 실패하고 호남은 다시 소망의 바위를 올리는 일을 계속해 왔다.’고 썼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고 운명에 당당히 대응해 가는 광주 호남인의 발걸음을 어떠한 우상도 권력도 막거나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적었다.
2022년 광주의 봄에 이미 광주 사람들은 부조리한 운명을 이겨 가기 위한 소통을 시작할 것이며, 희망의 단서를 찾기 위한 몸부림을 할 것이다.
그 첫째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니체가 말하듯 험난한 낙타의 삶을 견뎌내기 위한 광주 오아시스, 다시 말해 중앙정부와 자유롭고 강력히 저항할 수 있는 희망의 근거로서의 자치공동체로의 정치적 변화를 찾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광주답지 않은 것, 광주 정신과 다른 것과의 결연한 단절과 새로운 혁신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광주는 오아시스에서 힘을 키울 것이며 마치 애굽 땅에서 나와 사막을 이겨낸 사람들처럼 십계명을 만들고 스스로를 혁신시킬 것이다.
그러나 의와 예라는 높은 인간 정신을 보여준 광주에 항상 비어있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이다. 광주 정신이라는 위대함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비루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광주는 실용의 정신, 실학의 철학, 실증의 과학을 채우는 일을 해야 한다. 소농민은 지주에게 곡물을 빼앗겨 한의 노래를 부르지만, 중농은 작물의 생산성을 두 배로 늘리기 위해 농사를 혁신한다. 선비는 장사꾼을 하찮게 생각하지만, 상인은 자본을 축적해 기업을 만들고 금융을 만들어 경제를 일으킨다.
권력에 당하기만 한 사람들은 자식들 고시공부를 시켜 공무원과 판검사를 만들려 하지만 상식적인 법치 사회에선 어릴 때부터 수학과 디지털 교육에 집중해 과학자와 공학자, 창업자와 혁신가들을 만들어 낸다.
이제 광주 정신의 빈 곳에서 이런 실용 실증 실학의 광주문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려면 광주 정신이 고립이어서는 안 된다. 고립됐지만 세계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육지가 막히면 바다로 가야하고 바다도 막히면 하늘로 가면 된다.
또 광주의 정신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창출하는 정신이다. 낙후도시, 폐쇄도시, 부정의 도시가 아니라 활력 도시, 개방도시, 긍정과 희망의 도시로 변모되어야 한다.
[광주 정신+실사구시] 이것을 [광주 정신+1]이라고 부르고 싶다. 의와 예,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가 있지만, 혁신과 과학, 창업과 경제가 활발한 도시 광주! 무엇이 이를 가능케 할까? 비전도 있고, 리더도 필요하고 협동도 있지만 나는 광주시민 마음의 변화에서부터 그 답이 찾아지길 바라고,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새로운 [광주 정신+1]로 다가올 광주의 희망의 봄을 기다려본다.
GIST 부총장
- 학력 및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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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고등학교 졸업
- 독학행정학사 졸업
-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졸업
- 전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 UCLA 한국학연구소 객원연구원
- 유다시티 디지털마케팅 나노학위
- 현 지스트(GIST, 광주과학기술원) 대외부총장
-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비상임이사(2021~현재)
- (재)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 이사(2020~현재)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광주지역위 공동대표
- 광주광역시 동구청 동구발전혁신위원장
- 前 참여정부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장
- 前 한국산업단지공단 광주클러스터 단장
- 前 광주 기업주치의센터장(산자부) 광산구 기업주치의센터 센터장(광산구청)
- 前 지역미래연구원 원장
- 前 광주광역시장 시민특별보좌관
- 前 참여자치21 공동대표
- - 광주고등학교 졸업
-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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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의 도시 창조도시(e퍼플)
- 희망을 열다(한국산업단지공단, 공저)
- 김영집의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담론(전남일보 연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