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김선생의 광주사랑(487) 97세에 이옥남 할머니의 <아흔 일곱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읽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이 말이 참 좋게 들린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가, 꿈을 가꾸는데 나이가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라면, 나는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솔직히 나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장애물일 것이다. 나는 유화와 영어회화를 배우고싶다. 詩도 공부하고 싶다. 그러나 망설인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나이다. 재능이 부족하다는 자각(?)도 있다. 재능도 없는 할아버지가 꿈을 가꾼다고 기웃거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맥이 풀린다. 분수를 지키자. 새로운 시도는 포기하자. 지금까지 살던대로 살자.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하자. 이렇게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어른들도 있다. 노인이기를 거부하는 영원한 청년들이 있는 것이다. 이옥남 할머니도 그런 분이다.
할머니는 초등 학교도 다닌적이 없다. 혼자서 한글을 익히고, 일기를 쓰고, 책을 펴냈다. 맞춤법도 철자법도 서투른 어른이 어떻게 된 일인가?
할머니가 살아계신다면(살아 계시기를 빈다)2022년에는 101세가 되신다. 40년 가까운 나이차가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옥남 할머니는 소녀같은데, 나는 노인같은 느낌. 나이는 그냥 숫자라는 말이 맞는 것일까?
97세에 일기를 펴낸 이옥남 할머니는 누구인가? 할머니의 책 <아흔 일곱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에는 외손녀가 쓴 글이 실려있다. 나의 '할머니 이야기'다. 그 일부를 옮겨 싣는다.
할머니는 스스로 글자를 배웠다. 어렸을 때는 여자가 글 배우면 시집가서 편지질해서 부모 속상하게 한다고 글을 못 배우게 했다. 그래도 어떻게나 글이 배우고 싶었는지 오라버니가 방에 앉아 글 배우면 등 너머로 이렇게 보다가 부엌 아궁이 앞에 재 긁어내서 이게 '가'자였지 이게 '나' 자였지, 써 보며 글을 익혔다. 글자는 배웠지만 시부모, 남편 살아 있을 때는 글자 아는 체를 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남편 죽고, 시어머니 돌아가신 뒤에 드디어 글자를 써 볼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가 도라지 팔아서 산 공책에 글자를 쓰기 시작한 게 1987년이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꼬박 30년 동안 글자를 썼고, 그렇게 써 온 글자들을 이번에 책으로 묶은 것이다.
할머니가 공책에 쓰는 것은 '일기'나 '글'이 아니라, 그저 '글자'일 뿐이다. “글씨가 삐뚤빼뚤 왜 이렇게 미운지, 아무리써 봐도 안 느네. 내가 글씨 좀 늘어 볼까 하고 적어 보잖어”하시며 날마다 글자 연습을 한다. 낮에 일하고 들어오면 땀에 젖은 옷을 빨아 널고 방에 앉아 글자 연습을 하신다. 날씨를 적고 그날 한 일을 적고, 그리고 이제 몇 자 적어본다로 끝나는 글자들.
이옥남 할머니는 1922년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서 태어났다. 열일곱에 지금 살고 있는송천 마을로 시집와 아들 둘, 딸 셋을 두었다. 글씨 좀 이쁘게써 볼까 하고 날마다 일하고 집에 돌아와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다. 글쓴이가 만난 자연과 일, 삶을 기록한 글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책에는 우리 누이, 어머니, 할머니의 삶이 있다. 꿈과 사랑이 있다. 만화에 소개한 문장은 할머니의 실제 필적을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이다. 책의 본문은 맞춤법에 맞게 정리되어 있다.
나이와 배움에 구애받지 않고 꿈을 가꾸는 이옥남 할머니에게 박수를 보낸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모지스 할머니를 떠올렸다. 농부로 지냈지만 90이 넘도록 책을 가까이하고 먹을 갈다가신 아버지도 떠올렸다. 그리고 80이 넘어서 시인으로 등단하신 나의 형. 김영천 시인도.
이 어르신들은 등불이다. 새벽 하늘을 밝히는 샛별이다. 우리들의 영원한 스승이다.
나는 이옥남 할머니의 <아흔 일곱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은 책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의 책도 기대한다. 문자를 남기시면 꼭 사서 읽을 것을 약속한다.
* 김영인 : 하아, 이런 분 뵈면 어머니 생각~.
어머니는 무학으로 문맹이셨죠. 집안의 장녀로 엄한 부모밑에 자라 학교교육을 못받았었지요, 여자가 공부를 하면 되바라진다는 해괴한 논리였죠. 그나마 다큰 처녀때 저녁에 야학을 가르치는 강당(학당)을 다닐 기회가 있었지만 완고한 조부님께서 다큰 처자가 밤에 어딜 가겠다는 거냐고 반대하셨답니다. 그때 몰래 몇번 나가서 배운게 다 였답니다.
일전에 얘기했던 어머니가 행상하셨던 때, 계산이 서투르시니까 저녁에 그걸 다 기억하셨다가 저희와 일일결산을 보곤 하셨어요.
그런데요, 영섭형수님은 어머니가 손주가 어렸을때 뇌졸중으로 불편하신 몸으로 손주를 앉혀놓고 매일 시시때때로 글을 가르치셔서 얘가 머리가 일찍 깨우치게 된것 같다네요. 허 참, 그럴수가요 ^^.
어머니는 저희한테 달력 뒷장에다 숫자이며 한글기초를 써달라 하시곤 그것을 계속, 반복해서 가르치셨던 겁니다. 손녀인 희정인 그나마도 가르침을 못받았었다고 서운해 했구요~^^ 어머니 생각에 그리운 마음으로 몇 자 적어봤습니다~^^(김영인)
* 김길남 : 그런 일이 있었네요! 작은 어머니께서
써달라고 하신 한글기초. 무엇이었을까요?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처음듣는 이야기라서 많이 궁금해지네요.
* 김영인 : ㅎㅎ, 홀소리, 닿소리. ㄱ,ㄴ,ㄷ,ㄹ..., 가,나,다,라..., 간단한 단어등~^^ 아마도, 어머니가 몸도 불편하다보니 거동도 불편하여 자연스레 앉혀놓고 무한반복하다 보니 자연히 외워지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되네, 물론 손주도 흥미를 가졌고, 할 때마다, 잘했다! 100점! 하고 추임새를 넣어주시니 더욱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 근데, 나도 얘들 교육에는 빵점인듯~, 어찌보면 일자무식인 어머니 보다 못 한것 같네~^^
* 김길남 : 그러셨구만요. 감동입니다!
* 김영명 : '잘한다' 추임새가 어렸을 때는 학습의 동기요. 나이 먹어서는 삶의 기쁨이죠! 작은 큰어머니께서 5남매를 훌륭히 키우신 이유가 있군요. 그 뜻을 받드신 영인 형님도 '참 잘했어요!!!' 잊혀질 뻔한 주변의 소재를 찾고 숨어있는 의미를 찾아 공감을 이끌어 내는 길남 형님의 만화 칭찬합니다.
* 홀소리와 닿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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