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오월 정신 릴레이 아트, ‘세계 지성이 광주를 말하다’
인간人間의 ‘간間’자는 사이를 뜻한다. 인간 세상은 관계로 창조되고, 인간의 인식 프레임은 일체를 펼치고 규정한다. 신성한 시선은 덩어리라는 물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물체와 물체의 사이, 존재와 존재 사이, 텅 비었다고 인식하는 그것을 보는 것이요, 예술은 그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며, 몸의 움직임과 감각을 통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한다. 예술가들이 신들린 듯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예술가는 ‘사이’에서 작업하기 때문이다.
‘세계 지성이 광주를 말하다’ 대동의 춤
오월 최후의 항쟁이 있었던 구 도청 앞 민주광장 시계탑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한가로운 5월 29일 오후, 민주광장에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동체를 깨우는 북소리로 2021 오월 정신 릴레이 아트-‘세계지성이 광주를 말하다’ 융합예술제가 시작됐다. 북소리가 끝나자 최보결과 여신들의 춤이 이어지고 지신밟기를 하듯 오월어머니들과 광주시민들이 손을 잡고 평화의 춤을 추며 하나가 되었다. 그 춤은 태극무늬처럼 회오리가 되어 뉴욕에서 온 여성 신학자 현경 교수를 시민과의 대화의 자리에 모셨다.
민주광장에서 현경교수와 함께
세 개의 이미지는 원형적이고 상징적이었다. 광장에서는 다양한 시민들이 현경 교수와 함께하는 즉문즉답 토크쇼에 참여하며 질문을 했고, 현경 교수는 “혐오의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는 청년 예수의 목소리로 답하고, 이주민이나 장애우의 아픈 현실에는 경험 많은 지혜로운 할머니로, 때론 모든 것을 다 품고 들어주는 무등산이 되어 다양한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지혜를 나누었다. 오래된 집단 트라우마를 직면하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먼저 함께 추는 춤으로 경직된 기운을 바꾸고, 깊게 듣고 공감하고 통찰하며 각자가 품고 있는 가장 큰 지혜를 끌어내는 신성한 의식 같은 축제였다.
50명의 화가와 시민작가들은 광장 곳곳에서 걸개그림을 그리며 함께 했다. 60여 점의 걸개그림이 완성되고 광장 바닥에 나란히 펼쳐지자, 시민들은 작품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봤다. 그림들은 민주주의는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민주주의는 끝나지 않는 운동이다. 현재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고 있는 미얀마, 고통받고 있는 민주시민들을 응원하는 전국의 예술가들이 광장에 모여 그림으로 연대하고 있었다. 배우 이당금이 꽃을 가득 품고 그림 앞에 등장했다. 완성된 걸개그림 한 점 한 점에 헌화하는 퍼포먼스로 그림들은 숨을 쉬고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만 같았다. 오래된 미래에서 현재로 온 ‘예술 굿’이었다.
그 현장에 있었던 예술가들과 시민들은 민주광장에서 특별한 경험을 공유했다. 평화의 힘으로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었고, 미래를 예견하는 대화를 나눴으며, 신명 나는 연주와 노래를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5.18민주광장은 민주공동체의 영성과 지성과 감성이 빛을 발하는 오월의 신전이 되었다.
1980년 5월, 군부 쿠데타에 맞서 모인 시민들이 질서정연하게 원형광장에 모여, 어떻게 우리들의 삶을 지킬 것인가에 대해 발언하며 지혜를 모았고, 그 집단지성의 힘은 밥을 나누고 피를 나누는 대동 세상 10일간의 시간을 공유했듯이 우리는 오월광장에서 신성한 집단지성의 평화의 힘과 지혜를 공유했다.
1980년 나는 열세 살의 눈으로 그 광장을 보았다. 사람들은 총 앞에서도 용기 있었고 가난했지만 풍요로웠다.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 1980년 광주에서 있었던 항쟁이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기억의 공유는 우리 사회를 변화시켰다.
하성흡 전시 「역사의 피뢰침, 윤상원」
그 당시 외신 기자, 노먼 소프 기증자료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옛 전남도청 별관 2층에서 1980년 5월 27일 아침 광주 최후의 항전에 목숨을 바친 열사들의 시신 사진을 보았다. 김동수 열사의 모습도 보이고, 윤상원 열사의 그을린 시신도 사진에 찍혀 있었다. ‘최후의 항전’에 남았던 오월 영령들은 이 도청과 민주광장을 성지로 만들었구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처럼 윤상원의 시신은 다리를 겹치고 누운 채로 그을려 있었다. 그리고 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윤상원 열사의 일대기를 수묵으로 그린 하성흡 화백의 ‘역사의 피뢰침’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는 윤상원의 부활이었다.
하성흡, 「1980.5.21. 발포」
하성흡, 「윤상원의 부활」
윤상원 평전도 세상에 나왔다. 최후의 항전을 함께 하고 살아남은 동지, 김상집 선생이 쓴 평전이라 더 의미가 있었다. 광천시민아파트와 들불야학 이야기, 녹두서점 이야기, YWCA 이야기, 남동성당... 그리고 구 전남도청에서의 이야기!
그 장소들을 기억하고 있는 내겐 아주 특별하게 다가왔다.
윤상원 평전에 나온 부분이다. 들불야학을 이끌었던 윤상원과 박기순 두 열사의 영혼결혼식에 바쳐진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 박기순은 1978년 12월 25일 성탄절, 야학에 지필 땔나무를 구하러 화정동 뒷산에 올라가서 장작을 모아 놓고 피곤한 몸으로 오빠 집에서 잠들어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졌다. 갑자기 누이 같은 동지를 잃은 윤상원은 장례 내내 박기순 곁을 지켰고, 그는 1978년 12월 27일 이렇게 일기를 남겼다.
들꽃같이 살다간 누이여
왜 말없이 눈을 감고만 있는가
두 볼에 흐르던 장밋빛
늘 서럽도록 아름다웠지
그대의 죽음은 내게 무엇을 말하는가
아무리 쳐다보아도 넌 아직 살아 있을 뿐이다
죽을 수가 없다
흰 솜으로 그대의 코를 막고
흰 솜으로 그대의 열린 입술을 막았을 때
난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그러면 참말로 기순이는 죽어버린다고
그대는 정말 죽었는가
믿어지지 않은 그 죽음 앞에 모든 이들이 섧게 운다
모닥불이 탄다
기순이의 육신도 탄다
훨훨 타는 그 불꽃 속에 기순이의 넋은 한 송이 꽃이 되어
우리의 가슴속에 피어난다
윤상원 평전에 있는 이 일기를 소리 내서 읽다가 펑펑 울고 말았다. 너무나 인간다워서!
주홍
[학력]
전남대학교 미술학과 졸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
원광대학교 보건학(예술치료학) 박사
현 샌드애니메이션협회 이사장
현 갤러리생각상자 관장
현 메이홀 큐레이터
[강의 분야]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강사(미술의이해, 색채학), 1993~2002
Colorful Mind(컬러도미노를 이용한 그림책 만들기 스토리텔링 미술치료프로그램),
Sand Animation 교육프로그램-음악모래그림(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문화원 콘텐츠시범사업), 2010
EBS 시그널 제작(샌드애니메이션 26작품), 2010~2012
현대미술, 그 창의적 세계(교원연수). 2011
“움직이는 집”(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문화원 콘텐츠 시범사업), 2011
“피카소처럼 놀자” 어린이 미술교육 프로그램 제작(광주시립미술관 어린이문화 아카데미), 2011
아리랑TV 한국의 문화 100선 다큐 제작 “고구려 고분벽화”(샌드애니메이션), 2011
“미술과 과학의 만남” 영재교육프로그램(순천대학교 영재교육원), 2012
[저서 및 공저]
미술의 이해, 전남대학교 출판부, 1994
주홍 누드드로잉, 재원출판사, 1998
고물자전거, 바보새, 2005
아기고양이 미로, 바보새, 2005
@chkPar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