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1980년 5월. 광주를 생각할 때 공수부대와 싸운 시민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큰 배를 보되 그 배의 엔진은 못 보는 것과 같다. 5.18의 엔진은 녹두서점. 광주 5.18은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역사를 바꾼 자랑스런 기록이다. 인류역사에 꺼지지않는 횃불이다. 그 중심에 녹두서점이 있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5.18은 우발적이고 감정적인 충돌이었을 뿐이라고. 유언비어와 지역감정에 의해서 점화된 사건이었을 뿐이라고. 5.18을 그런식으로 깎아내리는 사람 가운데 대표적인 인사가 지만원 씨다. 그의 이름도 들먹이기 싫지만, 그는 진실을 마주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는 태극기부대의 망나니 나팔수일 뿐이다. 그에게 묻고싶다. 녹두서점을 아는가..
1980년 광주에 녹두서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않다. 광주시민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1980년 5월에 녹두서점 사람들이 광주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우리는 아는가?
사실, 녹두서점은 5.18이 일어나기전에 만들어진 서점이다. 이 서점은 독재자들에 의해서 판매금지된 책을 시민들에게 공급하고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서점이었다. 동시에
녹두서점 사람들은 야학을 열어서 가난한 노동자들을 가르쳤다. 노동현장에 직접 뛰어들어서 노동조합을 꾸리고,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데 앞장섰다. 그런데, 녹두서점 사람들에게 청천벽력같은 일이 닥쳐왔다. 공수부대의 군화소리와 함께 1980년 5월이 다가온 것이다. 녹두서점 사람들은 밤을 새워 고민했다. 토론했다. 그리고 분연히 떨쳐 나섰다.
이에 앞서 정권찬탈을 앞두고 신군부는 철저하게 준비했다.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예비검속을 단행했다. 정치 지도자들을 가두고, 전국의 대학 간부들을 체포해버렸다. 시민들의 조직적인 저항을 이끌어낼 수 있는 조직을 사전에 와해시킨 것이다. 광주에서도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 학생회 간부들이 모두 체포되었다. 체포되지 않은 이들은 지하로 숨어들었다.
이제, 광주는 지도자를 잃고 혼란에 빠졌다. 공수부대는 여기저기서 살인을 저지르는데, 이들에게 저항할 항쟁지도부는 궤멸되어 버렸다. 희망이 사라진 광주. 광주는 공수부대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하는가? 이때 어둠을 헤치고 떨쳐 일어선 시민들이 있었다. 한 사람 두 사람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녹두서점 사람들이었다. 1980년 5월. 공수부대의 만행을 외면하고 눈감은 시민들은 없었다. 모든 시민이 항쟁에 참여했다. 노동자, 학생, 주부, 예비군 등등 신분이나 직업을 가리지 않았다. 무고한 시민들이 총칼에 많이 희생되었다. 이 시민들의 숫자에 비하면 녹두서점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그러나 녹두서점 사람들이 없는 5.18은 상상하기 힘들다. 칠흑같은 역사의 밤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던 샛별같은 도시. 그 도시를 밝힌 등불. 녹두서점. 그 등불이 있어 그 도시는 빛고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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