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돌씨 목소리Ⅲ 의병 3부자-나라 위해 몸 바친 고경명과 두 아들 글 · 그림 : 김길남 웹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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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너는 중․고등학교에서 지리교사로 근무하다 퇴직 후 웹툰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길남 웹툰 작가의 연재 코너입니다. 김길남 웹툰 작가가 운영하고 있는 광주사랑 블로그(http://yeisee.blog.me)에는 광주의 역사, 문화, 인물 등 다양한 이야기가 4컷으로 그려진 만화와 함께 담겨 있는데요. 퇴직 이후 열심히 수집한 광주에 대한 자료의 핵심만 쏙쏙 뽑아 만화로 제공한 광주 사랑 이야기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광주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광주평생교육 웹진 「무돌씨의 마르지 않는 샘」을 통해 연재되는 김선생의 광주사랑!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이번 주제는 "나라 위해 몸 바친 고경명과 두 아들"입니다.

<편집자 주>

김선생의 광주사랑(416)의병 3부자-나라 위해 몸 바친 고경명과 두 아들

임진왜란 초기 조선군을 설명하는 단어는 네 글자였다. 그것은 기성도주棄城逃走. 일본군의 공격을 받은 관군이 하나같이 성을 버리고 도망을 갔던 것이다. 이때 왜적을 물리치고자 스스로 달려온 백성들이 있었다. 훈련받은 군인이 아니면서도 나라를 구하고자 떨쳐 일어난 의로운 병사. 義兵들이다. 여기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친 의병 3父子가 있다. 의병장 고경명과 그의 두 아들 고종후와 고인후다.

고경명은 무인이 아니었다. 홍문관 교리, 서산군수, 동래부사 등 관직을 두루 거친 문인이었다. 그가 퇴직하여 고향으로 내려왔을 때 임진왜란이 터졌다. 그는 일본군과 싸우기 위하여 곳곳에 격문을 띄웠다. 순식간에 의병 6천명이 고경명의 휘하에 모였다. 고경명 부대는 일본군을 쫒아 금산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크게 이겼으나 곧 전세는 불리해졌다. 고경명은 안타깝게도 금산전투에서 둘째아들 인후와 함께 순국했다. 이에 큰 아들 종후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대를 모았다. 최경회, 임계영, 변사정 등 고경명 휘하의 의병장들이 호응했다. 이들은 고립무원의 진주성에서 일본의 정예 부대를 맞아 싸웠다. 그러나 처음부터 승산이 있어서 시작된 싸움은 아니었다. 애석하게도 많은 병사들이 최후를 맞이했다. 고종후와 귀인, 봉이 등 두 노비도 목숨을 잃었다. 3부자와 노비들까지 나라에 목숨을 바친 것이다. 고경명 3부자를 생각할 때마다, 의병 3형제 김덕령 장군이 떠오른다. 역사의 하늘에 빛나는 귀한 이름들이다. 우리는 그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청사에 새겨 길이 전해야 한다.

(자료1 - 광주역사 바로보기, 광주광역시, 2014. pp.58 ~ 60 )
(자료2 - 광주를 만나면 길이 보인다, 남성숙, 다지리, 1999. pp.66 ~ 70)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라는 글은 이순신 장군이 호남의 전략적인 위치를 설명하면서 나온 말이다. 호남을 빼앗기면 조선을 지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한 표현이다. 한편, 임진왜란 당시 호남의병, 이순신 장군과 권율 장군을 도왔던 호남출신 병사들과 백성들의 공적을 이야기할 때에도 이 말을 인용하는 분들이 있다. 이 말을 끌어와서 호남인들의 역할이 그만큼 컸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이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라는 문장을 씀으로서 말하고자 했던 의미에서 벗어난다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다. 나는 그 비판을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임진왜란에서 호남과 호남인의 역할이 컸던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한말 의병을 놓고 보더라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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