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이야기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김은성 | 前광주송정도서관 문해교육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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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평생교육사로서의 첫발을 금호평생교육관에서 내딛었던 나는 다양한 평생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던 중 우연히 ‘한글교실’을 접하게 되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하얀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자”라는 말이 있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삶의 중심으로 살아온 이들에게는 낯설고 생소한 일이다. 한글교실은 이처럼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세상 모든 것이 답답한 세월을 감내해온 분들이 학습자로 자리하는 공간이었다.

한글교실 학습자들을 떠올리면 ‘공부’, ‘배움’, ‘학교’라는 단어만 들어도 못 배운 설움이 밀려들어 말을 잇지 못하시던 모습, 각자가 가진 무거운 사연 하나하나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수많은 평생교육프로그램 중 ‘문해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된 순간이기도 했다.

그 후 나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운영하는 문해교육교원양성과정에 참여하였고,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성인문해교육의 현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장 속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원봉사자와 운영자, 선생님들의 끝없는 노고를 체감할 수 있었다.

2015년, 광주송정도서관에서 초등학력인정 성인문해교육 담당자로 근무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문해교육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송정도서관은 2013년부터 「학력인정 성인문해교육기관」으로 지정되어, 한글교실에 참여했던 기존 학습자와 문해교육을 한 번도 받지 못했던 신규 학습자를 대상으로 초등학력인정 성인문해교육을 3단계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학업의 성취와 학력인정보다 ‘배움’ 자체를 즐거워하고 중학학력인정으로의 진입이 두려워 지속적인 학습지원을 필요로 하는 학습자를 위하여 송정학당을 개설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문해교육은, 배움의 시기는 놓쳤지만 교육에 목말라 용기를 내 도전하는 학습자의 삶의 이야기이자 꿈이기도 하다.
처음 입학원서를 작성하기 위해 방문한 학습자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으로 문해교육의 문을 두드린다. 가족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자녀들과 함께, 지인들과 함께……. 방문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모두 학습에 대한 열정과 의지, 그리고 기대감을 품고 입학 상담에 임한다.

방문의 유형만큼이나 사연도 가지가지다. 배우자가 먼 길을 떠나버린 후 혼자서는 은행도, 동사무소도 갈 수 없는 학습자의 사연이 가슴에 와서 박혔다. 글자가 들어가는 모든 상황에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돌아보며 무기력과 상실감을 안고, 우울한 모습으로 문해교육을 찾았던 어르신. 이 학습자들은 누군가의 할머니, 어머니, 아내, 누나로 한 세대를 짊어져 온 분들이다. 오직 가족을 위한 사랑을 실천하며, 몸과 마음을 모두 불살라 희생해 오셨다.

평생을 가슴에 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그리고 말하지 못했던 배움에 대한 한을 늦깎이 학생으로 입학하여 풀어나간다. 한 걸음씩 걸음마를 떼는 것처럼, 글자 하나하나에 울고 웃는다.
오늘 배워도 내일이면 잊어버리는 나이임에도 아침이면 구부정한 허리로 책가방을 메고 도서관 계단을 오른다. 교실에 들어서면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가 보고 싶어서, 본인의 지난 사연을 들어주고 마음을 나누는 선생님이 좋아서 바지런히 학교(학습자들은 도서관을 학교라고 한다)를 찾는다.

학력인정 성인문해교육은 정규교육뿐만 아니라 창의적체험활동을 동반한다. 외부강사초청 특강과 특별 체험활동, 현장체험학습 등 다양한 내용의 학습과정은 학습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학습의욕을 고취시킨다. 광주광역시 단위, 전국단위로 개최되는 백일장대회, 시화전, 체험수기 등 각종 문해교육 관련 행사도 여럿이다. 자신의 솔직담백한 생각과 마음들을 꾹꾹 눌러 담아 행사에 참여하고, 수상하는 학습자를 보고 있자면 숨겨진 자질과 능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특히 광주평생교육진흥원이 개최한 ‘도전 문해골든벨’ 참여를 앞두고, 두꺼운 예상문제지가 닳아지도록 까만 줄을 연신 그으며 열의를 보이는 학습자의 끝없는 열정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놀랍기만 했다. 2019년 전국 성인문해학습자 백일장대회에서 우수상을, 광주성인문해학습자 시화전에서 최우수상을, 그리고 체험수기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등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송정도서관 학습자들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보람이고, 자랑이다.

지역의 문화유적지를 찾아가는 현장체험학습은 교실 밖에서 이루어지는 또 다른 학습의 장이었다. 여수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찾았다는 학습자의 말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염색체험, 전통문화체험, 역사체험 등 각종 체험의 현장에서 소감문을 작성하기 위해, 문화해설사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메모하는 학습자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도강사님을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하고 부르시며 집에서 싸 오신 각종 간식들을 나누는 모습이 정겹고 따뜻했다.

매년 12월이 되면 한 해 동안의 학습결과물을 한자리에 모아 성과공유회를 개최한다. 수상작을 발표하고 반별 장기자랑을 하며, 학습자 개인의 학습 결과물을 문집으로 엮어 공유하는 모든 시간이 뜻깊고 감동적이었다.

항상 변함없이 일선에서 학습자를 격려하고, 배움의 길로 이끌어주신 배평심, 윤효신, 강인원, 정순자, 이상선 선생님의 수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깊은 감사를 드린다. 선생님들의 끊임없는 수고와 헌신은 학습자를 발전하게 했고, 기록적인 학습의 성과를 남겼으며, 배움의 기회를 놓친 수많은 학습자가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암껏도 모르는데…….”
첫 강의를 시작하기 전 많은 학습자들이 걱정 섞인 질문을 건네곤 한다. 여기에 나는, “학습자님들은 단지 글자를 몰라 불편한 삶을 살았을 뿐, 대한민국의 훌륭한 인재들을 이 시대의 주역으로 키워내신 훌륭한 분들이다”라고 격려하고 싶다.

문해교육 담당자로 학습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함께 울고, 웃고, 안타까워하고, 격려하던 시간들이 벌써부터 그립다. 기회가 된다면, 더욱 다양한 학습과정으로 학습자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김은성 前광주송정도서관 문해교육담당자

  • 소속 광주광역시교육청 직속 금호평생교육관
  • 학력 광주동신여자고등학교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 교육학과 학사
  • 이력 금호평생교육관 청소년강좌 운영(2020년~현재)
    광주송정도서관 학력인정 성인문해교육 및 평생교육프로그램 운영(2015년~2019년)
    금호평생교육관 금빛평생교육봉사단 및 평생교육프로그램 운영(2002년~2014년)
  • 자격 평생교육사 2급
    사회복지사 2급
    국가평생교육진흥원 문해교육교원양성과정 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