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작품집Ⅱ 문해 작품전 수상작 : 수기공모전 1편 지훈구 | 광주평생교육진흥원 인생다모작팀 | 광주문해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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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2019년 전국 성인문해교육 수기공모전
여든 살의 축복
강만금
  시니어 일자리 교통지킴이를 마치고 바쁘게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린다. 한글 수업이 9시에 시작인데 지킴이 일이 9시에 끝난다.
조금 일찍 끝내고 가고 싶지만 정해진 규칙이라 어쩔 수 없다.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다리는 후들후들하고 허리가 더 아픈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눈이 침침하고 조금만 글자를 보고 있으면 어지러워 더 이상 볼 수 없다.
눈이 이렇게 내 공부를 막고 있구나 싶으면 짜증난다.

80년을 사용했으니 탓할 수도 없지만 내 맘은 조금이라도 알아주면 좋겠다 싶다. 송정공원에 위치한 송정도서관은 가파른 계단이 많다. 난간을 잡고 몇 번을 쉬다 가다를 한다.
우리 반은 받아쓰기를 하고 있을 텐데 이 놈의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서관 4층 엘리베이터를 내린다. 문으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선다.
반갑게 맞이하시는 우리 선생님, 언제나 고맙다. 어떨 때는 힘들게 오신다고 박수도 쳐 주신다.

“어서와 친구야”
받아쓰기 한 것을 보여주며 빨리 준비하라 한다. 난 4번부터 받아 적는다. 앞 번호는 친구 공책을 보고 얼른 써 마무리한다. 일자리를 그만 두고 싶어도 한 푼이라도 모아서 손주들 용돈 주고 싶어 힘들어도 참고 한다.

난 한글 공부를 하고 난 뒤부터 달라진 게 있다. TV를 보면서 자막을 열심히 본다.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메모했다가 선생님께 그 뜻을 물어본다. 그러면 선생님은 자세히도 예를 들어가며 설명을 해 주신다. 어찌나 고마우신지 모른다.

“어르신, 어려서 공부했더라면 큰 인물이 되셨겠어요? 공부하는 자세가 훌륭해요. 그래서 표현력이 좋은가 봅니다.”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해 볼 때도 있다. 집에서 항상 책을 가까이 놓고 읽다가 눈이 아프면 ‘이놈의 눈’하며 마실을 나간다.

어려서 어렵게 살지는 않았는데 아주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갔다. 남편은 백수건달이지, 난 일을 할 줄 모르지, 살아갈 날이 캄캄해서 하늘을 보고 한탄한 적이 수없이 많았다. 한 번은 남편이 산에다 밭을 만든다한다. 반 가운 소리에 새참을 해서 머리에 이고 갔더니 남편은 온데 간데 없고 일꾼들만 일을 하고 있었다. 일꾼들에게 물으니 “기다리지 마시오. 오지 않을 겁니다.” 잠시라도 기대했던 내가 한심할 지경이었다. 이 기막힌 내 맘을 하늘이 알까? 땅이 알까?

그러던 남편이 광주로 이사를 가자 한다. 손에 쥔 것도 없이 달랑 올라왔는데 이 놈의 도시는 물도 돈이요, 화장실도 돈이요, 전기도 돈이요, 돈, 돈, 돈……. 할 수 없이 해 본 것이 농사일이라 수소문해서 이웃 사람들을 따라 농사를 지었다. 그때만 해도 전남대학교에 땅이 많았었다. 그 곳을 일궈서 입에 풀칠을 하고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엎친 데 덮친다더니 그동안 얘기를 돌봐주시던 시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얘기를 업고 포장마차를 준비해서 학교 앞에서 튀김장사를 했다. 그 더운 여름에 아기가 자면 등이 너무 더워 다라이에 눕혀놓고 우산으로 해를 가려주기 새근새근 잠든 아이가 고마웠다. 추워도 걱정, 더워도 걱정, 한시도 맘 편할 날이 없이 살았다. 하느님이 도우셨는지 백수건달 남편이 중개소를 해서 다소 돈을 벌었다. 덕분에 아이들 학교를 보내고, 잘 커서 직장 잡고 결혼시켜 놓으니 내 할 일은 다 했구나 싶었다.

자식들을 세상으로 내보내고, 남편은 하늘나라로 보내니 내 둥지는 허전하기만 했다. 70평생을 허리 한번 펴보지 못하고 오직 이일 저일 하면서 살다보니 망가진 내 몸이 말이 아니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그래도 잘한다 했는데 뇌졸중으로 한 번 쓰러지고 나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눈이 자꾸 힘들게 한다. 그래도 참고 도서관에 오니 옛 친구들도 만나고 동생 언니들도 만나 기쁘지 그지 없었다. 더군다나 성인문해교육 백일장대회에서 상장이 왔다. 특별상이란다. 상 이름처럼 나에게 특별하고 귀하다. 80살 이 나이에 특별상이라니 자식들에게 자랑하고 싶다. 아니 이웃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 내가 해 냈다고 말이야. 내 맘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선생님께도 고맙다 인사하고 싶다. 이젠 모든 짐 내려놓고 내 자신만을 위해 살고자 하는데 그리 쉽지가 않다. 자식들은 교통지킴이 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래도 내가 존재하다는 걸 알리고 싶어, 내 손주같은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힘들어도 나간다. 뿐만 아니라 80살 이 나이에 공부하여 글을 쓴다는 이 기쁨을 누가 알기야 하겠냐마는 난 더 없이 자랑스럽다.

부풀어 오르는 가슴 안고 새가 되어 저 멀리 더 높이 날아 더 먼 세상 더 좋은 세상 구경하다 지치면 바위에 앉아 쉬어가고 싶다. 흘러가는 구름과 감미로운 바람과 함께 아름다운 꽃들도 보고 시원한 숲에서 쉬면서 내가 이렇게 살았노라, 이렇게 힘들게 살았지만 내 꿈은 있었노라. 꼭 자서전을 써 자식들에게 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