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모두가 이로운 마을 공동체를 꿈꾸며 이세형 | 협동조합 이공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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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부터 제가 들려드리는 이야기는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함께”가 아니었다면 절대 해낼 수 없는 일들입니다. 저는 단지 “혼자“ 살면서 느끼는 외로움보다 “함께” 살면서 느끼는 불편함이 훨씬 더 견디기 쉬워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의 꿈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꿈들이 기적처럼 이뤄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믿습니다. 개인보다 공동체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요.

2015년 11월 마을살이를 꿈꾸던 몇 명의 친구들이 40년 전에 지어진 오래된 단독주택을 임대했다. 마당과 옥상, 넓은 거실이 있고 집 바로 앞에는 잘 정돈된 텃밭과 정자가 있고, 가끔 기차가 지나다니기도 하는 운치 있는 동네다. 5분만 걸어가면 도서관과 공원, 지하철역이 있고, 10분만 걸어가면 시장이 있고, 15 분만 걸어가면 공항과 기차역이 있는 살기 좋은 동네다. 100만원이라는 돈을 모아 우리가 직접 인테리어공사를 했다. 도배와 장판을 교체하고 화장실과 곰팡이가 심한 방을 수리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셰어하우스이공이다. 함께 공간을 사용하는 친구들뿐만 아니라 이공과 관계된 동네 주민, 친구들, 활동가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거의 매일 모여 작당모의를 하다가 어떤 지원도 받지 않는 “자발적 문화제”를 만들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친구, 야외 공연이나 영화 상영을 해보고 싶다는 친구, 어린 시절 살던 이 동네에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친구 등 다양한 꿈들이 모여 “ 송정공원문화제”를 열었다. 음악회, 노래방, 영화상영 등 매월 한 번씩 문화제를 열었고 처음에는 ‘쟤들 뭐지’ 하던 분들이 후원을 하기도 하고 기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2016년 2월 어느날 SNS에 한 글이 올라왔다. 30년이 훌쩍 넘는 오래된 아파트(17평 남짓)를 3년 동안 무상 임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우연히도 셰어하우스이공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집이었다. 집 주인을 만나보니 우리와 비슷한 나이였고 12월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훈을 받아 글을 올린 거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열 가족이 신청을 했지만 워낙에 오래된 집이었고 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찮아 ‘집을 직접 고쳐본 경험이 있는’ 우리를 선택했다고 했다. 2월에 계약을 하고 3월에 “두 번째 셰어하우스이공 기획단”을 모집했다. 총 여덟 명의 기획단이 모였고 이 집을 어떻게 고칠지, 입주조건을 어떻게 할지, 공사비를 어떻게 마련할지 논의했다. 3월부터 시작한 공사는 11월이 돼서야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고 12월 한 명 입주를 시작으로 지금은 세 명의 친구들이 살고 있다. 총 600만원 정도가 공사(자재비)에 들어갔고 그 중 400만원을 기부 받았다(송정시장 단골국밥집 이모님이 100만원을 선뜻 보내주셨다는). 공사에 들어간 비용과 살면서 발생하는 비용을 제한 수익금은 청년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아마도 또 다른 재밌는 이야기와 새로운 만남들이 생겨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든다.

마을살이가 가능하려면 머무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결국 일터와 삶터, 놀이터가 마을에 있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런 고민이 협동조합이공 설립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또 한 번의 기회가 왔다. 광산구에는 주민참여플랫폼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한 곳이 송정시장카페인 아름다운송정씨다. 2017년 2월 아름다운송정씨를 운영할 법인단체를 모집하는 공고가 올라왔고 협동조합이공도 도전했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함도 있었지만 이공이 하고자 하는 일들을 도모하기에 좋은 공간이라는 점이 메리트였다. 무엇보다 가난한 협동조합이공(출자금 1,000만원)에게 보증금도 권리금도 인테리어비용도 없이 수익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컸다. 결국 3:1의 경쟁을 뚫고 우리가 선정되었다. 한 달 동안 최소한의 비용으로 분위기를 변화하고 간판을 바꿔 달았다. 아름다운송정씨에서 송정마을카페이공으로.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이용하는 사람들 모두가 만족하는 그런 카페로.
카페 운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커피” 에 “커” 자도 모르고 “사업”에 “사” 자도 모르는 우리에겐 더더욱 그랬다. 메뉴 가격을 정하는 일부터 재료를 구매하는 일, 머신을 청소하는 일까지 하나하나 배우며 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이번에는 조합원들 지인들까지 힘을 모았다.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주신 분, 바리스타교육을 해주신 분, 보안과 방역 업체를 알아봐주신 분...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그 일들을 했는지, 다시 하라면 절대 안할 거다. 오픈 이후에도 줄곧 난관에 부딪혔다. 매출이 오르지 않는 건 차치하더라도 미리 주문하지 않아 재료가 떨어지거나 기기들이 고장 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났다. 또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손님과 싸울 뻔 하기도 했고 취객이 난동을 부릴 때도 있었다.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어려움이 끊이지 않는다. 오픈부터 함께 했던 친구가 그만두기도 하고, 가을부터 겨울까지 카페 비수기이니 어찌보면 지금이 최대의 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고민하고 헤쳐 갈 친구들이 있어 덤덤히 받아들인다. 이번 협동조합원의 날에는 겨울 카페운영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를 하기도...

협동조합 이공이 생겨난 배경 속에는 꿈이 있는 청년들을 지지하고 함께 하기 위함이 크다. 요즘의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꿈에 대해 묻지 않게 되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들에 사로잡혀 사고가 굳어버리기 일수다. 좋은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가는 일이 중요한 삶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한 번쯤은 엉뚱한 상상을 하거나 이상한 도전을 하길 바란다. 송정마을카페이공이 생기기 전에는 송정공원문화제나 TravelMaker이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실험해왔다. 그중 겨울을 기다리며 준비한 “TM이공페스티벌 강변캠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광산구에서도 캠핑한번 해보자’ 시작은 역시 가벼웠다. 2016년 11월 초에 광산구 임곡강변에 20개 정도의 텐트를 치고 무대를 설치했다. 낮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밤에는 우리만의 촛불문화제를 진행했다. 노래방 기계를 설치해 밤새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11월이었고 비까지 내려 많이 추웠다. 또 준비하고 정리하는 데만 해도 하루가 걸리는 “일” 중에도 “큰 일”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왜 안 하냐, 그때 정말 재밌었다는 참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다시 몸이 근질근질하다.
카페를 오픈한 이후에는 카페라는 공간에서 다양하고 엉뚱한 작당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싶었다. 또 작은 꿈이지만 혼자서 어찌해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카페라는 공간이 힘이 돼주고 싶었다.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다 우리 동네 주민들에게는 문화적 혜택을 주고 공연이나 전시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공간을 줄 수 있는 기획이 나왔다. 이름하여 “10일마다 돌아오는 우리동네 노는 날, 열밤자고만나 일공이공삼공”이다. 매월 10일(일공데이)에는 전시를 희망하는 누군가에게 한 달 동안 벽을 빌려주고, 20일(이공데이)에는 공연을 꿈꾸던 누군가에게 공연을 열어줬다. 그리고 30일(삼공데이)에는 누군가 보고 싶은 영화나 다큐를 감상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이공데이는 매번 감동을 선사했다. 그중 “우쿠렐레 일주년 자축 연주비행”을 기획한 10월 이공데이의 주인공은 그의 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지인들이 꽃다발과 한 개의 촛불이 세팅된 케이크를 건네는 깜짝 이벤트를 보고는 눈시울을 붉혔다는.. 열밤자고만나 일공이공삼공의 주인공들은 우리처럼,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보다는 “하고 싶다”는 생각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다.
어쩌면 지금까지 제가 들려드린 이야기는 “돈”이 있었다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에 관한 겁니다. 하지만 “돈”이 없어도 누군가의 꿈을 지지하는 또 다른 누군가들이 모여 꿈을 이뤄낸결코 흔하지 않은 그런 이야기입니다. 물론 함께 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누군가는 뜻이 맞지 않아 이탈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원하는 일들을 함께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또한 꿈을 꾸는 일에 주저하지 않고 함께 하자고 말해주는 이들이 더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이로운 마을공동체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로운 마을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이 함께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 세 형
협동조합이공 이사장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후 책을 만들고 사진을 찍고 싶어 서울로 상경했다. 나이 서른에 ‘나는 왜 항상 외로울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수행공동체 정토회에 들어가 문경, 서울, 인도 등에서 5년간 활동했다. 2013년 다시 광주로 돌아와 시민단체와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했다. 2016년 1 월 청년들의 마을살이를 고민하다 뜻이 맞는 친구들과 협동조합 이공을 설립했다. 이공은 다를 異와 빌 空을 더해 “다른 꿈들이 소통하는 이상한 공간”이라는 뜻과 이로울 利 와 함께 共을 더해 “이로운 공동체”라는 두 개의 뜻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