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퇴직 후에도 균형 잡힌 생활과 더불어, 이웃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원할 것이다. 광주평생교육진흥원에서는 중장년세대의 인생이모작을 위한 커뮤니티(동아리) 활동을 지원하고자 공모 사업을 상·하반기에 2회 운영하고 있는데, 올 상반기에 선정된 커뮤니티 중 ‘건강’과 ‘ 봉사활동’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동아리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이름도 예쁘다.

  광주시 광산구 송정동 먹거리가 즐비한 ‘1913 송정역시장’을 지나다 노란색 간판에 시선이 꽂혔다. 과거 재래시장 골목에 낡은 건물을 ‘손질’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산뜻했다. 책방이라기보다 이쁜 카페 같았다. 책방 ‘인생가게’다. 이곳은 20평 남짓 정도나 될까? 카페 같다는 느낌처럼 테이블과 의자가 예쁘게 정돈돼 있다. 책장에는 여행, 인문학, 동화, 철학, 시집, 에세이, 소설 등 독립 출판물부터 베스트셀러까지 다양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독특한 점은 벽면에 진열돼 있는 책들 사이사이 끼어있는(?) 맥주들이다. 차분히 앉아 맥주 한 잔 맛보며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흐뭇한 마음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다 문득 또다시 발걸음이 멈췄다. 이 책방은 또 책의 표지가 보이지 않게 포장한 책들을 진열해두고 있었다. 어떤 책인지 전혀 모르고 구입해야한다. 책 광고와 표지만을 보고 사는 것보다 진짜 좋은 책을 ‘추천’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판매다. 우연히, 생각지 못했던 책이 인생에 큰 선물이 되길 바라면서…. 그래서 책방 이름도 ‘인생가게’라고 한다.


  ‘인생가게’ 말고도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동네 책방이 또 있다. 광주시 동구 동명동에 문을 연 ‘지음책방’이다. 겉에서 보기에도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비탈길 중턱에 위치한 이곳은 비탈길 아래에서 보면 2층이고, 비탈길 위에서 보면 단층으로 보인다. 햇빛에 바란듯한 초록색 외관이 문을 열기 전부터 마음을 사로잡는다. ‘지음책방’은 탁자 대신 식탁이 비치돼 있다. 긴 식탁 위에는 아름다운 문양의 접시와 컵, 나이프와 포크들이 놓여 있어 책방인지 레스토랑인지 헷갈린다. 벽면에 진열된 책들을 꺼내 보면서 맥주와 스테이크, 샐러드나 파스타를 즐기는 색다른 경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먼저 진열돼 있는 책들에 시선이 간다.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 김종영의 ‘지배받는 지배자’, 최진석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 동네 책방의 책 목록은 책방 주인장과 그리고 책방의 정체성과 닮아있을 수밖에 없다. 광주시 동구 동명동 푸른길에 문을 연 ‘책방 심가네박씨’ 주인장은 시민과 함께하는 인문학 모임 ‘인문지행’을 이끌고 있는 박해용·심옥숙 부부다. 부부의 성에서 따온 책방 이름이 재밌다.


  무엇보다 이 책방은 다른 동네 책방들보다 공간이 꽤 넓다. 함께 모여 공부할 수 있는 널찍한 책상을 갖추고 있어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는 공부방 역할을 하고 있다.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현대 독일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박씨, 그리고 그와 같은 대학에서 문예철학과 독일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심씨. 두 부부는 한국에 돌아와 문학, 서양철학, 심리학 등 인문학 강좌로 시민들을 만나왔다. 매주 화요일에는 ‘소설, 철학적으로 읽기’(버지니아 울프)를 진행하고, 올 하반기에는 광주평생교육진흥원 인문학 교육 활성화 공모 사업으로 진행되는 ‘자존감을 키우는 인문학(~10.27까지)’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미술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강좌와 책을 소개하는 강의도 운영할 예정이다.

  편안하게 찾아가 다른 곳에서 찾기 쉽지 않은 책을 보는, 그런 작지만 매력 넘치는 공간. 이런 기특한(?) 생각을 가진 청년들이 문을 연 동네 책방들이 있다. 광주시 동구 동명동 ‘파종모종’과 동네 특유 느낌들이 남아있는 광주시 남구 양림동에 문을 연 ‘라이트 라이프’. 그리고 젊음이 북적대는 전남대 후문 인근에 ‘연지책방’이다. 이들은 모두 20~30대 청년들이다. 그래서인지 책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기자기’하달까? 햇살이 스며드는 창가에 앉아 책을 보거나, 은은히 비춰오는 조명 아래에 앉아 고즈넉하게 독서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책방들은 유독 더 작은 느낌이다. 3평에서 10평 남짓 사이다. 주인장들 모두가 안정된 삶을 원하는 또래와 다른 길을 선택한 청년들이다. 그나마 돈도 되지 않고 알아주지도 않지만 “책방을 문화 거점으로 키우겠다”, “독서가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지역 사회에 퍼뜨리고 싶다”는 야무진 꿈을 용감하게 실현해나가고 있다.

  전남대 후문에 위치한 연지책방은 독립출판·책방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오빠가 원고를 써놓고 책 출간이 거절당하자 주인장 민희진 씨가 문을 열었다. 주로 독립출판된 책에 초점을 맞춰 전시·판매 중이다. 동명동 주택 2층에 있는 ‘파종모종’도 편집·사진에 흥미를 느끼던 양지애 씨가 “스스로 편집하며 만들 수 있겠다” 싶어 문을 연 독립출판사이자 책방이다. 평범한 주택 같지만 재밌는 공간이다. 양림동 ‘라이트 라이프’는 독립출판 서점 ‘오월의 방’ 주인이 서울로 떠나면서 지인이었던 김대선 씨가 인수해 운영하는 공간이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영상·영화’ 등 좋아하는 분야를 다룬 책을 만들어 내놓고 함께 공유하는 게 좋았다. 독립출판물 책방이자 독립영화상영관을 갖추고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우리 삶에 작은 위안을,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는 동네 책방.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상당수의 책방은 경영난에 시달리다 1∼2년 만에 문을 닫기도 한다. 가격과 배송에서 인터넷 서점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동네 책방들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반갑다. 사람들을 만나고 정을 나누는 문화사랑방, 이런 공간들이 늘어나고 사랑받으면서 이 사회가 건강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