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작품집Ⅰ 문해 작품전 수상작 : 수기공모전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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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2019년 전국 성인문해교육 수기공모전
용기와 희망을 준 한글공부
박영신
나는 광주 광산구 임곡에서 7남매 중 넷째(둘째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보아온 우리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서 항상 누워계셨다. 아버지는 동네사람들에게 한문까지 가르치는 학자이셨지만 어쩐 일인지 자기 자식들은 도무지 관심이 없고 방치하셨다.

큰 오빠는 겨우 외가집 할아버지께 글을 배우고, 큰 언니는 가정살림을 모두 이끌어 갔으며, 나도 함께 가사일을 돌보아야 했다.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것은 당연하였고, 나의 어린시절과 소녀시절은 이렇게 어렵게 보내야만 했다.

스무 살 되던 해에 신안 암태도로 시집을 갔다. 어려서 친정에서 살아온 것이 힘들어 시집가면 살림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시할머니, 시어머니, 남편, 시누이, 시동생들 할 것 없이 모두가 나에게 일 못한다고 욕하고 거칠게 대했으며 두드려 맞는 일이 다반사였다. 첫 아들 낳고 세이레도 안지나, 산에서 나무하고 내려와 밭일하는 곳에 새참과 점심을 늦게 해왔다고 어찌나 욕하고 때리는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내가 낳은 아이마저도 젖먹일 때 말고는 안아보지도 못하게 하고 가까이 있지 못하게 했다. 농사철에 집안일 마치고 논에 나가면 왜 이리 늦냐고 게으르고 일도 못한다며 친정에서 무얼 배웠냐며 니가 무슨 공주냐며 눈물 나게 야단을 맞곤 했다. 시누이와 시동생 결혼시킬 때조차 결혼한다는 말 한마디 안해 주고 동네사람들에게 듣고야 알게 되었다. 그래도 결혼식 마치고 와서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모두 해놓고 울면서 기다리는 모양은 꼭 콩쥐 같았다. 어느 날 도둑누명을 쓰고 너무나 억울해 저수지에 빠져 죽으려 했으나, 어린 젖먹이가 눈에 어른거려 다시 집으로 들어가며 흘린 눈물을 저수지의 물보다 많았다.

이런 와중에 시어머니는 집을 나가라 막말을 하여 광주의 친정으로 쫓겨나왔다. 4개월이 지나니, 남편이 찾아와 사정하여 다시 섬으로 들어갔으나 역시 예전과 똑같이 술을 마시고 밤새 성가시게 굴었다. 참다 참다 나를 괴롭히는 이유를 대라며 대들었더니 그 이후로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어찌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도 모른다. 그러다 광주로 나와 살게 되었다.

나는 아들, 아들, 딸 삼남매를 두었다. 그런데 큰아들이 결혼하여 이혼을 하게 되어 큰아들 손자 연년생을 세 살 이전부터 기르게 되었다. 아들의 도움 하나 없이 나 혼자서 손자들 기르고 가르치는 일은 또 얼마나 힘들었는지. 나에게는 왜 이런 힘든 일만 계속되는지 야속하기만 하였다.

내가 어릴 때나 섬에 살 때에는 공부할 형편도 안되고, 공부할 곳도 없었으나 늘 공부에 대한 갈망은 간절했다. 이 모두가 글을 몰라 무시당하고 살았다는 생각에 한이 되었다. 내가 섬으로 시집간 해가 몇 년도인지, 광주로 뛰쳐나온 날과 광주로 이사 온 해가 언제인지, 내 이름조차 정확시 쓸 줄 모르고 살아왔던 것이다.

이제는 시집간 딸이 글을 가르쳐 주어 이름도 쓰게 되었으나, 딸에게 배운다는 것이 어려움이 참 많았다. 그러다 금호도서관에서 한글공부를 시켜준다는 말을 듣고, 한 달 동안 손주를 데리고 다니면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그만 두게 되었다. 3년 후, 다시 가니 1주에 한 번, 5학년 공부를 하고 있어서 따라가기 무척 힘들었다. 어찌 그리 챙피한지......

드디어 남구복지관에서 일주일에 3번 공부한다는 말을 듣고 기초부터 배우게 되었다. 나에게 맞추어 개인지도로 가르쳐 주어 글도 제대로 알게 되니 그 기쁨은 너무나 컸고 희망과 용기가 생겼다. 이사 온 년도도 제대로 모르고 이름도 쓸 줄 몰랐던 내가 한글을 알게 되고 오늘이 몇월 며칠인지도 알게 되었으며, 한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희망과 용기다!’ 생각하니 기쁨이 넘쳐났다. 늘 신랑에게 ‘멍청이’라는 말을 듣고 살았으나, 이제는 나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니 용기가 생기고 남편에게 당당하게 공부하러 간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공부를 한다는 자부심에 예전에 없던 용기가 생기고 챙피함은 어디로 사라지고 없다. 어쩐지 내 자신이 당당해지고 말도 잘하게 되었다. 선생님께 칭찬받으며 어깨도 으쓱해졌다.

이곳 남구노인복지관에서 한글 공부하는 일이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지금은 아파서 누워있는 남편에게 내 맘속에 든 말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련다. 내 생활에 용기와 희망을 준 한글공부, 참 자랑스럽다. 아들과 딸에게 편지를 쓸 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