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돌씨 인터뷰Ⅱ 공부하는 엄마들,예술-문학-희곡으로 삶을 만나다 청년인문공간 러브앤프리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 인쇄

과거에 비해 여성들의 사회·기업 참여도가 증가했다고 하나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두꺼운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2019 여성기업가 시티 인덱스 보고서, ‘여성기업가 지수’ 50개 도시 중 서울이 41위) 경제협력개발기구 29개국 중 한국은 유리천장 지수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 지역사회의 경력 단절 여성들의 소통과 쉼, 자기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러브앤프리’를 만나 보았다.

러브앤프리 대표 윤샛별
1‘청년인문공간 러브앤프리’ 공간은 어떤 곳 인가요? 1층은 서점과 전시물로 2층은 인문학 수업과 북토크를 하는 곳으로 되어있는데요. 이런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러브앤프리는 사랑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바람을 담은 공간으로 2017년 7월, 근대 역사 문화가 남아 있는 양림동에 오픈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공부 모임을 꾸준히 경험해 오면서 문턱이 높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개개인의 경험이 공유되는 인문학 공부 환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층에는 서점을 열어 책에 관심 있는 많은 이들이 방문할 수 있게 하고요. 2층에서는 책과 함께 쉬며, 공부하며, 사람들을 만나 삶을 나누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러브앤프리는 독서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공부 모임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습니다. 명절을 빼고는 매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입니다.

2광주평생교육진흥원의 후원으로 ‘공부하는 엄마들, 예술-문학-희곡으로 삶을 만나다’라는 사업을 하고 계신데요. 특별한(?)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러브앤프리’는 ‘인문’과 ‘공부’를 키워드로 20-30대 지역 청년을 중점으로 프로그램들을 진행해 왔었는데요. 서점에는 다양한 세대의 손님들이 방문을 합니다. 10대부터 60대분들까지 오시죠. 오시는 손님들이 ‘러브앤프리’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에 많은 관심과 요청을 보내 주셨습니다. 특히 자기 삶의 주체적 힘을 기르고자 하는 욕구, 오롯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주부 세대의 바람이 읽혀졌어요. 그래서 육아와 가정을 돌보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점점 내지 못하고 있는, 소위 말해 ‘경력 단절’을 겪고 있는 30-40대 주부들, 엄마들을 대상으로 문학과 예술로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3참여하시는 분들에게 앞으로 ‘청년인문공간 러브앤프리’가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시는지요?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에 진행되는 ‘공부하는 엄마들’ 프로그램은 함께하신 분들뿐만이 아니라 저에게도 낯섦을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들의 연속이었죠. 서양미술사 속의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작품을 감상하고 나만의 작품을 그리고 만들어 보는 일, 익숙하지 않았던 고전 작품을 읽고(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 책을 읽은 것까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 보는 일, 희곡을 읽으며 목소리로 연기를 해 보고 나만의 대본까지 써 보는 일. 매주,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시간 속에서 육아에, 가정 일에 놓치고 있던 자신을 만나기도 하고요. 새로운 나를 만나기도 하는 시간이었어요. 처음 몇 번의 만남에서는 서로 어색한 분위기였는데, 어느새 서로 웃고 울고 다독이며 안부와 삶을 나누는 사이가 되어 있었죠. 러브앤프리는 그런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낯설지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곳, 그 경험을 함께하면서 내 삶이, 우리의 삶이 즐거워질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러브앤프리 프로그램 담당자 김보라
4학습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기억에 남는 참여자가 있으신가요? 어떤 일화가 기억나시는지요?
실은, 매회 기억에 남는 사람이 생깁니다. 지금 떠오르는 일화는 미술 수업 때의 일인데요. 야수파 마티스에 대한 이론 설명 뒤 종이를 잘라 붙이는 실기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본인이 직접 칠해 만든 색 도화지로 원하는 모양을 조각내어 붙이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고 집중력도 꽤나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손에 온통 물감이 묻은 것을 보고 참가자분들끼리 한바탕 웃기도 했고요. 그중 한 참가자 분이 유독 견고하고 세밀하게 작품을 만드시더라고요. 예사 솜씨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의 따님이 미술을 공부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따님이 ㅇㅇ님의 재능을 닮은 것 같다”고 말했더니 그러냐며 웃으셨습니다. 그때 ‘아, 기회가 필요한 건 아이들이나 학생들뿐만이 아니구나. 재능을 발휘하고 계발할 기회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눈치 채지 못한 채 지내는 여성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실감했고요. 그때의 일이, 누구보다 진지하고 집중하는 표정으로 작품을 완성하던 참가자 분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습니다.
5인문 강의를 하면서 미술 실기를 하거나 강의 뒤에 토론을 하는 등 강의 구성이 흥미롭습니다. 참여자 분들의 호응이 좋았던 수업은 어떤 수업이었나요?
모든 수업이 좋은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지만 그중에서도 희곡, 특히 직접 극을 연기해 볼 때 참가자분들의 호응이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제가 연기를 한다고요?” 하는 반응으로 어색하고 쑥스러워했지만 나중에는 기가 막힌 애드리브를 펼칠 정도로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연극의 특성상 어렵지 않게 다들 감정이입을 하셨어요. 또, 단순히 활자로 읽을 때보다 직접 인물이 되어 보는 것이 더 깊이 있게 작품을 느껴 보는 기회가 되었고요. 그 덕분에 많이 웃고 또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시간에 유언과 같은 독백을 만들면서 다 같이 웃고 울며 자신만의 독백 대사를 한 명씩 발표 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문학 강사 은경춘
6‘춘향전, 잘 알지만 모르는 사랑’이라는 주제의 수업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아는 춘향전이야기를 통해서 사랑에 대해 토론을 하는 수업이 있군요. 이 수업에서 어떤 사랑 이야기가 나왔나요?
먼저는 성춘향과 이도령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이야기했어요. 이팔청춘의 당당한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나누고요. 춘향전을 주제로 수업을 한 후에는 참가자들의 결혼 전 사랑과 결혼 후의 사랑을 이야기해 봤는데요. 각자가 어떻게 사랑을 해 왔고, 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해 보는 시간이었어요. 대부분 20대 연애할 때의 사랑은 뜨겁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사랑을 했다고도 이야기했어요. 결혼을 하고 시간이 흐른 지금에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서로를 알아봐 주면서 배려해 주는 사랑을 이야기했어요. 또 건강하고 예쁜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행위가 동반되어야 하는 것도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7인터뷰를 마치며
(학습자 A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막연히만 알던 예술, 문학, 희곡이라는 세 가지 분야를 더욱 디테일하게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즐겁게 접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음 기회에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었으면 합니다.
(학습자 B님) 학교를 다니면서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하지 못했던 경험을 삼 개월 동안 할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이런 경험은 서울에 살아야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중·장년층도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정말 가까이서 몸소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 사회의 단단한 유리천장을 깨기 위한 길은 아직 멀고도 험난하다. 열정과 도전으로 유리천장을 앞서 깨뜨린 이들은 여성 개개인의 ‘개인기’가 아니라 ‘제도와 정책’의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러한 작은 공동체의 노력이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는 매우 미미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힘들이 모여 큰 대양을 이루고 사회 전반에 퍼져, 그 거대한 파도가 견고하게만 보였던 유리천장을 깨뜨려 주기를 기대한다. ‘러브앤프리’를 통해 파도를 이룰 물결을 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