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돌씨 인터뷰Ⅱ 나를 알고, 나를 찾는 시간 : 갭이어(Gap Year) 이상현 | 제2기 웹진 기자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 인쇄

‘갭이어(Gap Year)’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 말은 ‘1년 동안 삶을 돌아보고 방향을 재설정하는 휴식기’를 말하며, 영국의 한 대학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취업준비생이든 당신에게 1년의 휴식기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일주일 동안 푹 잠만 자야지, 한 달 동안 유럽배낭여행을 다녀올까.’ 등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상상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이내 ‘그런데 그 1년 동안 난 뭐 먹고 살지?’하는 걱정과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생각들이 함께 들 것이다. 이에 아모틱협동조합 추민승 대표(이하 추민승 지기)는 일상을 지키면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평소에 하지 못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난 활동을 할 수 있는 ‘슬금슬금 갭이어;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하 갭이어 프로그램)이라는 한국형 갭이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갭이어 프로그램은 지난 2~3월에 추진된 광주평생교육진흥원 신규콘텐츠 제안 공모에 지원하여 최종 선정됐다. 3월 31일(토)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6월 9일(토)까지 만 19~39세의 청년 20명이 모여 ‘함께, 분노, 도전’이라는 주제로 총 11차시 5번의 만남으로 진행됐다. 마침 찾아간 날은 ‘분노하기’를 주제로 수업이 진행됐다.

학습자들과 전화통화를 통해 출석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광주남구청년센터(청년와樂(락), 광주광역시 남구 독립로2)

비오는 토요일이었지만, 나를 알고자 하는 학습자들이 하나 둘 광주남구청년센터(이하 청년센터)로 모여들었다. 20대 대학생, 취업준비생이 대부분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30대 직장인들도 많았고 심지어 타지에서 이 수업을 듣기 위해 온 학습자도 있었다. 추민승 지기는 ‘학습자들이 자기탐색이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연령이나 직업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업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됐으며, 주강사(한승석 지기)가 주제를 설명하고 질문을 주면 학습자들이 서로 소통하며 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갭이어 프로그램에서는 본명 대신 서로 닉네임을 사용한다. 닉네임을 부르는 이유로 한민아 지기는 ‘조금 더 편한 분위기에서 딱딱하지 않고 친해질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죠.’라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강사 또한 '지기'라 칭하며, 닉네임을 사용한다.

데이빗 공략 : 관계개선 프로젝트!
데이빗공략 결과를 조별로 발표하고 있다.
감정단어목록을 통해 데이빗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수업은 근황토크라는 주제로 지난 차시에 있었던 숙제를 점검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데이빗공략’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는데, ‘데이빗’이란 나와 갈등을 빚고 있지만 친해져야 하는,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예로 직장상사 등을 말한다. 학습자들은 조별로 돌아가면서 지난 차시에 고백했던 데이빗과 어떻게 관계개선을 하고 있는지 감정단어 목록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그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분노’가 표출됐고, 어떤 사람은 데이빗과 관계가 개선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고구마를 찾아라! : 내 안의 분노 발견하기
분노를 유발하는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영상을 참고하여 자신의 분노상황을 조원과 소통하고 있다.

이어 ‘고구마를 찾아라.’라는 주제로 한 영상을 시청했다. 영상의 내용은 누구나 분노를 느낄만한 내용으로 학습자들은 분노하고 몰입했으며, 분노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한승석 지기는 10분 간 내가 분노했던 경험이나 상황을 찾아보고, 조원들과 공유해보라는 질문을 주고 물러났다. 이에 학습자들은 근황토크 때처럼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며 소통하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모임으로 서로 다른 것들에 대해 분노하고, 분노의 해결방법 또한 달랐다. 누구에게는 분노치 않을 일이 분노가 됐고, 누구에게는 어려운 일이 쉬운 일이 됐다.

학습자들은 자연스럽게 타인의 이야기에 경청하게 되고, 공감하며, 자신을 표현하고, 더 나아가 해결방법까지도 제시했다. 처음 제시한 10분이 지났음에도 열띤 토론은 계속됐으며 분노로 시작했던 토론은 신기하게 이야기가 계속 될수록 분노는 사그라들고 웃음으로 끝맺음을 했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 내 안의 욕구 발견하기
타인을 공감하는 방법으로 ‘그랬구나.’ 화법을 제시했다.
대화를 통해 발견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

한승석 지기는 ‘분노는 욕구가 방해됐을 때 나온다.’라고 말했다. 운전을 하다가 다른 차가 갑자기 끼어들었을 때 화가 나는 이유는 상대가 나의 안전하고 싶은 욕구를 침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학습자들은 자신의 분노상황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며 자신의 분노가 어떤 욕구에서 오는지 규명하기 시작했다.

발표까지 하고나니 점심시간에 가까워졌다. 원래 일정은 보성 율포해수욕장으로 이동하여 야외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이 날 비가 오는 관계로 영광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신 후, 백수해안도로를 타고 다시 광주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변경됐다. 학습자의 입장에서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점심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려면 가까운 곳에서 먹어도 될 텐데 굳이 멀리까지 갈까? 한승석 지기는 우리가 이곳까지 와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 이유는 “말로만 하는 설명이 아닌 직접 새로운 환경에서 여행과 음식, 휴식을 경험함으로써 학습자들은 분노를 해소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고 했다.

분노해소 꿀Tip : 여행, 식도락, 휴식, 표출
밥상엎기 콘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자신의 감정을 공유하며 하루를 정리하고 있다.

다시 청년센터로 돌아와 ‘분노폭발 콘테스트’를 진행했다. 테스트 방법은 ‘밥상 엎기’이다. 누가 밥상을 더욱 멋지게, 기술적으로 힘 있게 엎는가를 점수를 매겨 1등 학습자에게는 문화상품권이 증정됐다. 콘테스트에 참여한 학습자들은 밥상을 엎는 과정 자체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고, 참여하지 않는 학습자들도 다른 학습자의 밥상엎기 슬로우비디오를 보며 크게 웃을 수 있었다.

끝으로 오늘의 감정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습자 스스로 오늘 하루를 정리하며 그 안에서 느끼고 배운 점을 상기했다. 로켓이 하늘로 날아가는 사진을 보며 ‘만약 로켓의 추진기가 꼬리가 아닌 머리 부위에 있었으면 로켓이 어디로 날아갔을까?’라는 역설과 함께 수업을 마무리했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관계를 개선하고, 분노를 발견하고, 분노를 욕구와 연결하고, 해소하는 방법까지, 알고는 있지만 쉽지 않는 과제들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과정을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며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앞으로도 삶을 돌아보고 재설정의 시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큰 힘이 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되길 희망한다.

학습자 인터뷰 수정씨 (29세, 여)는 4년 동안 청소년복지시설에서 근무했으며,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평범한 20대 후반 여성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요?
직장에서 4년 일을 하고, 다양한 것을 경험하기 위해 잠시 휴식기를 갖고 있는데 이 기간이 무의미하게 소비되고, 경력단절로 인해 현업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있어요.
지금 무엇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나요?
최근에 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직장생활을 오래했고 앞으로도 일을 하겠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할지 고민하고, 가끔 내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게 돈 때문인 것 같아 속상할 때가 있어요. 현실적으로 결혼을 생각할 나이인데 ‘집’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번 돈 만으로 부족하고 부모님의 도움 없이 이루기 어렵기에 답답해요.
어떻게 하면 그런 힘든 점이 해소될까요?
돈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환경이 공정해졌으면 좋겠어요. 눈치 보지 않고 정시에 퇴근할 수 있고, 그 이상의 시간의 일을 하면 당연히 수당을 받을 수 있고요.
지금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하고 오래 일을 하면서 제가 너무한 가지 영역밖에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일을 쉬면서 전혀 다른 것들을 경험하는 과정이 제 나름대로의 역량개발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현업으로 복귀했을 때 무의미할 수도 있지만 내가 원했던 일이기에 이 시기를 잘 보내고 있어요.
광주평생교육진흥원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진흥원은 공식적인 교육이 끊어진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교육활동을 아우르는 역할을 해야 하는 공식적인 기관이잖아요,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재교육에 대한 수요가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을 보듬을 수 있는 교육의 깊이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봐요. 또 스스로 시간이나 돈을 들여 교육할 수 없는 사람들, 교육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을 진흥원이 해소하는데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봐요.
강사진 인터뷰

아모틱협동조합은 ‘나다운 삶’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컨텐츠를 개발하는 단체이다. 그 과정으로 진로탐색, 직무탐색, 현장교육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있으며 ‘슬금슬금 갭이어’는 기존의 워크샵 형태 수업방식에서
활동영역을 넓혀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고 소통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학습자들의 학습효과를 높이고 있다.

(좌 한민아 지기, 중 추민승 지기, 우 한승석 지기)

프로그램 기획 의도, ‘함께, 분노, 도전’을 키워드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승석 지기) 사실 키워드가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잘 못하는 것들이에요. 함께, 관계를 맺는 것, 요즘은 관태기라는 말도 있듯이 SNS를 통한 소통을 편하게 생각하고 직접적인 인간관계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렇게 필요하지만 잘하지 못하는 주제들을 키워드로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이 지금의 ‘슬금슬금 갭이어’의 모습인 것 같아요.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추민승 지기) “나 자신을 알아라” 나를 들여다보고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거기서 부터가 출발이에요.
청년들에게 분노란 무엇인가요? 분노를 알고, 표출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민아 지기) ‘분노’란 수업에서도 말했듯이 ‘욕구’와 연관이 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특히 청년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 단순히 아쉬움이나 슬픔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들도 분노로 표출 하는 것 같아요. 분노와 슬픔, 괴로움의 감정을 구분할 줄 알고 그러한 상황을 해소할 수 있어야지 내가 편하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힘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함께’, ‘분노’, ‘도전’ 이외에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승석 지기) 그 이외의 것은 우리가 아닌 학습자 개개인의 필요에 의해 정해진다고 봐요. 어떤 학습자에게는 관계가 중요하고 어떤 학습자에게는 도전이 필요하기도 하거든요. 저희는 학습자 각자가 갭이어를 설계할 수 있도록 기본과정을 제공하고 그 이후 조력하는 역할을 해요.
현재의 내가 있을 수 있게 해준 결정적인 갭이어(Gap Year)가 있나요?
(한승석 지기) 지금까지 삶을 살며 여러 경험을 하며 가장 많이 고민한 게 나의 앞날, ‘진로’였어요.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나의 앞만 고민했지 나 자신을 들여다 본 적이 없었어요. ‘내 인생은 계속 변하는데 그 시선을 나에게 돌린 적이 없었구나’하는 고민을 시작으로 지금의 이 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딱 한마디!
(한승석 지기) 할까 말까할 때 해라, 사실 재기만 하고 잘 안하게 되잖아요. (추민승 지기) 비슷해요, 사실 해보지 않고 알 수 있는 게 많이 없더라고요. 일단 뛰어들고, 뛰어들었을 때 그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광주평생교육진흥원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
(추민승 지기) 평생교육이라고 했을 때 주는 이미지나 실제로 하는 학습들이 보통 강의식으로 하는 게 많잖아요. 하지만 저희가 하는 활동처럼 이게 무슨 수업이야 라고 생각하는 것들에서 실은 더 많은 것들을 스스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진흥원에서 갭이어 프로그램을 수용해준 고마움을 느끼고 있고,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와 방식의 프로그램들이 수용되어 많은 학습자들이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상현
제2기 광주평생교육 웹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