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이어(Gap Year)’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 말은 ‘1년 동안 삶을 돌아보고 방향을 재설정하는 휴식기’를 말하며, 영국의 한 대학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취업준비생이든 당신에게 1년의 휴식기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일주일 동안 푹 잠만 자야지, 한 달 동안 유럽배낭여행을 다녀올까.’ 등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상상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이내 ‘그런데 그 1년 동안 난 뭐 먹고 살지?’하는 걱정과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생각들이 함께 들 것이다. 이에 아모틱협동조합 추민승 대표(이하 추민승 지기)는 일상을 지키면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평소에 하지 못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난 활동을 할 수 있는 ‘슬금슬금 갭이어;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하 갭이어 프로그램)이라는 한국형 갭이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갭이어 프로그램은 지난 2~3월에 추진된 광주평생교육진흥원 신규콘텐츠 제안 공모에 지원하여 최종 선정됐다. 3월 31일(토)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6월 9일(토)까지 만 19~39세의 청년 20명이 모여 ‘함께, 분노, 도전’이라는 주제로 총 11차시 5번의 만남으로 진행됐다. 마침 찾아간 날은 ‘분노하기’를 주제로 수업이 진행됐다.
비오는 토요일이었지만, 나를 알고자 하는 학습자들이 하나 둘 광주남구청년센터(이하 청년센터)로 모여들었다. 20대 대학생, 취업준비생이 대부분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30대 직장인들도 많았고 심지어 타지에서 이 수업을 듣기 위해 온 학습자도 있었다. 추민승 지기는 ‘학습자들이 자기탐색이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연령이나 직업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업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됐으며, 주강사(한승석 지기)가 주제를 설명하고 질문을 주면 학습자들이 서로 소통하며 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갭이어 프로그램에서는 본명 대신 서로 닉네임을 사용한다. 닉네임을 부르는 이유로 한민아 지기는 ‘조금 더 편한 분위기에서 딱딱하지 않고 친해질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죠.’라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강사 또한 '지기'라 칭하며, 닉네임을 사용한다.
수업은 근황토크라는 주제로 지난 차시에 있었던 숙제를 점검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데이빗공략’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는데, ‘데이빗’이란 나와 갈등을 빚고 있지만 친해져야 하는,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예로 직장상사 등을 말한다. 학습자들은 조별로 돌아가면서 지난 차시에 고백했던 데이빗과 어떻게 관계개선을 하고 있는지 감정단어 목록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그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분노’가 표출됐고, 어떤 사람은 데이빗과 관계가 개선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구마를 찾아라.’라는 주제로 한 영상을 시청했다. 영상의 내용은 누구나 분노를 느낄만한 내용으로 학습자들은 분노하고 몰입했으며, 분노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한승석 지기는 10분 간 내가 분노했던 경험이나 상황을 찾아보고, 조원들과 공유해보라는 질문을 주고 물러났다. 이에 학습자들은 근황토크 때처럼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며 소통하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모임으로 서로 다른 것들에 대해 분노하고, 분노의 해결방법 또한 달랐다. 누구에게는 분노치 않을 일이 분노가 됐고, 누구에게는 어려운 일이 쉬운 일이 됐다.
학습자들은 자연스럽게 타인의 이야기에 경청하게 되고, 공감하며, 자신을 표현하고, 더 나아가 해결방법까지도 제시했다. 처음 제시한 10분이 지났음에도 열띤 토론은 계속됐으며 분노로 시작했던 토론은 신기하게 이야기가 계속 될수록 분노는 사그라들고 웃음으로 끝맺음을 했다.
한승석 지기는 ‘분노는 욕구가 방해됐을 때 나온다.’라고 말했다. 운전을 하다가 다른 차가 갑자기 끼어들었을 때 화가 나는 이유는 상대가 나의 안전하고 싶은 욕구를 침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학습자들은 자신의 분노상황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며 자신의 분노가 어떤 욕구에서 오는지 규명하기 시작했다.
발표까지 하고나니 점심시간에 가까워졌다. 원래 일정은 보성 율포해수욕장으로 이동하여 야외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이 날 비가 오는 관계로 영광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신 후, 백수해안도로를 타고 다시 광주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변경됐다.
학습자의 입장에서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점심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려면 가까운 곳에서 먹어도 될 텐데 굳이 멀리까지 갈까? 한승석 지기는 우리가 이곳까지 와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 이유는 “말로만 하는 설명이 아닌 직접 새로운 환경에서 여행과 음식, 휴식을 경험함으로써 학습자들은 분노를 해소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고 했다.
다시 청년센터로 돌아와 ‘분노폭발 콘테스트’를 진행했다. 테스트 방법은 ‘밥상 엎기’이다. 누가 밥상을 더욱 멋지게, 기술적으로 힘 있게 엎는가를 점수를 매겨 1등 학습자에게는 문화상품권이 증정됐다. 콘테스트에 참여한 학습자들은 밥상을 엎는 과정 자체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고, 참여하지 않는 학습자들도 다른 학습자의 밥상엎기 슬로우비디오를 보며 크게 웃을 수 있었다.
끝으로 오늘의 감정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습자 스스로 오늘 하루를 정리하며 그 안에서 느끼고 배운 점을 상기했다. 로켓이 하늘로 날아가는 사진을 보며 ‘만약 로켓의 추진기가 꼬리가 아닌 머리 부위에 있었으면 로켓이 어디로 날아갔을까?’라는 역설과 함께 수업을 마무리했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관계를 개선하고, 분노를 발견하고, 분노를 욕구와 연결하고, 해소하는 방법까지, 알고는 있지만 쉽지 않는 과제들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과정을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며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앞으로도 삶을 돌아보고 재설정의 시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큰 힘이 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되길 희망한다.
아모틱협동조합은 ‘나다운 삶’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컨텐츠를 개발하는 단체이다. 그 과정으로 진로탐색, 직무탐색, 현장교육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있으며 ‘슬금슬금
갭이어’는 기존의 워크샵 형태 수업방식에서
활동영역을 넓혀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고 소통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학습자들의 학습효과를 높이고 있다.
(좌 한민아 지기, 중 추민승 지기, 우 한승석 지기)
- 이상현
- 제2기 광주평생교육 웹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