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코너는 중․고등학교에서 지리교사로 근무하다 퇴직 후
웹툰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길남 웹툰 작가의 연재 코너입니다.
김길남 웹툰 작가가 운영하고 있는 광주사랑 블로그(http://yeisee.blog.me)에는
광주의 역사, 문화, 인물 등 다양한 이야기가 4컷으로 그려진 만화와 함께 담겨 있는데요.
퇴직 이후 열심히 수집한 광주에 대한 자료의 핵심만 쏙쏙 뽑아 만화로 제공한
광주 사랑 이야기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광주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광주평생교육 웹진 「무돌씨의 마르지 않는 샘」을 통해 연재되는 김선생의 광주사랑!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이번 주제는 ‘광주의 전설’로 광산구 신창동에 있는 정자 ‘풍영정[風詠亭]’의 숨은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광주평생교육 웹진 「무돌씨의 마르지 않는 샘」을 통해 연재되는 김선생의 광주사랑!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이번 주제는 ‘광주의 전설’로 광산구 신창동에 있는 정자 ‘풍영정[風詠亭]’의 숨은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풍영정 현판 글씨가 삐뚤삐뚤한 사연 - 바람에 날아간 바람 풍자
풍영정 현판 글씨가 삐뚤삐뚤한 사연 - 바람에 날아간 바람 풍자. 풍영정 현판의 글씨를 보면 참 이상합니다. 글씨들이 통일성이 없습니다. 특히 바람 풍자가 이상합니다. 세 글자일 뿐인데 왜 글자들이 이렇게 제각각일까요? 그 사연을 알아봅시다.
광산구 신창동에 있는 정자 풍영정(風詠亭)은 조선조 명종 때 승문원 판교를 지냈던 칠계(漆溪) 김언거(金彦据)가 세운 정자입니다. 김언거의 호는 칠계(漆溪) 또는 칠천(漆川)으로 불리던 극락강의 옛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풍영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영산강 구간은 풍영정의 이름을 따서 풍영정천(風詠亭川), 또는 줄여서 영천(詠川)이라고 불렀습니다. 광산구 월곡동에 있는 영천초등학교, 영천중학교의 이름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풍영정 이야기는 김선생의 광주사랑 제8회에서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풍영정 현판에 관련된 전설이 있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풍영정(風詠亭) 현판 글씨를 살펴보면 바람 풍(風)자가 조금 작고 나머지 두 글자에 비해서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옵니다.
풍영정을 지을 무렵에 광주에는 갈처사라는 명필이 있었습니다. 김언거는 갈처사에게 풍영정 현판 글씨를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김언거는 열 세번을 찾아갔지만 갈처사를 만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갈처사(葛處士)’라는 이름도 심상치 않고 상당히 신비스러운 인물이었나 봅니다. 열 네 번째 찾아갔을 때에야 겨우 갈처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갈처사는 칡넝쿨로 붓을 만들어서 풍영정 세 글자를 쓱쓱 써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절대로 가는 길에 글씨를 펼쳐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김언거는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김언거가 종이를 펼치자 느닷없이 바람이 불어와 바람 풍(風)자가 하늘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김언거는 다시 갈처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다시 써줄 수 없다. 다시 쓸려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뿐입니다. 하는 수없이 갈처사가 소개해준 제자인 황처사를 찾아가서 바람 풍자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이 현판글자를 쓰다보니 풍영정 현판의 글씨들이 제각각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바람 풍자가 어색하게 보입니다. 혹시 풍영정에 들르시게 되면 살펴보세요.
광산구 신창동에 있는 정자 풍영정(風詠亭)은 조선조 명종 때 승문원 판교를 지냈던 칠계(漆溪) 김언거(金彦据)가 세운 정자입니다. 김언거의 호는 칠계(漆溪) 또는 칠천(漆川)으로 불리던 극락강의 옛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풍영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영산강 구간은 풍영정의 이름을 따서 풍영정천(風詠亭川), 또는 줄여서 영천(詠川)이라고 불렀습니다. 광산구 월곡동에 있는 영천초등학교, 영천중학교의 이름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풍영정 이야기는 김선생의 광주사랑 제8회에서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풍영정 현판에 관련된 전설이 있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풍영정(風詠亭) 현판 글씨를 살펴보면 바람 풍(風)자가 조금 작고 나머지 두 글자에 비해서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옵니다.
풍영정을 지을 무렵에 광주에는 갈처사라는 명필이 있었습니다. 김언거는 갈처사에게 풍영정 현판 글씨를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김언거는 열 세번을 찾아갔지만 갈처사를 만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갈처사(葛處士)’라는 이름도 심상치 않고 상당히 신비스러운 인물이었나 봅니다. 열 네 번째 찾아갔을 때에야 겨우 갈처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갈처사는 칡넝쿨로 붓을 만들어서 풍영정 세 글자를 쓱쓱 써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절대로 가는 길에 글씨를 펼쳐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김언거는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김언거가 종이를 펼치자 느닷없이 바람이 불어와 바람 풍(風)자가 하늘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김언거는 다시 갈처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다시 써줄 수 없다. 다시 쓸려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뿐입니다. 하는 수없이 갈처사가 소개해준 제자인 황처사를 찾아가서 바람 풍자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이 현판글자를 쓰다보니 풍영정 현판의 글씨들이 제각각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바람 풍자가 어색하게 보입니다. 혹시 풍영정에 들르시게 되면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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