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미래의 역사를 열어갈 수 없다.’는 말은 다시 오월을 맞는 우리들의 가슴으로 안겨드는 푸른 하늘같은 진리이다. 아직도 감춰진 진실을 열지 않고 도리어 왜곡되고 폄훼된 자서전을 써서 역사를 단순히 시간과 상황의 기록물로 만들려고 하는 ‘그네들’에게, 우리들이 당한 억울한 희생과 고통을 알아봐달라고 애원하는 일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국민들이 위탁하고 위임한 국가권력이 부당하게 국민들의 삶과 공동체를 짓밟는 일에 대한 끊임없는 경계와 감시를 되새기는 일이 ‘오월의 역사정신’이라는 얘기이다.
하지만 5.18민주화운동(이하 5.18)은 잘 알려진 것처럼 파쇼화된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과 투쟁 행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참혹하고 황당한 폭력만행이 펼쳐지는 참상 속에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공동체의 안녕을 위하여 함께 연대한 ‘칼레의 시민들’ 보다 더 깨어있는 근대적 시민의식이 그대로 펼쳐진 역사적 현장이었다. 아니 그러한 관점을 뛰어넘어 ‘밥과 피’를 함께 나누면서 ‘같이 죽고 같이 사는’ 공동체 의식, 곧 ‘내가 너’인 세상, 사람을 다 한 가족처럼 생각하는 대동정신으로 다시 태어난 인간의 모습이 드러난 신생의 현장이었다. 사회학자 최정운은 이를 두고 ‘절대공동체’라고 명명하였다.
어디 이뿐이랴, 하나뿐인 개인의 생명을 버리면서도 지켜야할 사회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인식하고 실천한 철학이 그대로 발현된 현장이기도 했다.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바로 그의 두 눈이었다. 바로 코앞에 임박한 죽음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부드러움과 상냥함을 잃지 않는 그의 눈길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예수님을 보는 것 같았다. 본국에 돌아온 뒤 꿈에서도 그는 형형한 눈빛으로 나타났다.”는 1980년 당시 ‘볼티모어 선’지의 기자였던 브레들리 마틴의 윤상원 열사에 대한 증언이 이를 대변한다.
이처럼 5.18에는 공동체의 윤리적 주체를 확정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은 물론이며, 이를 형성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야할 정신가치의 내용과 의미가 확연히 담겨있다. 이러한 정신가치는 그대로 ‘오월인문학’의 개념을 구성하며, 갈수록 자본과 효율의 힘으로 국경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우리들의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대척점에 선 미래의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광주전남작가회의는 지난 1970년대 전근대적인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서 싸운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광주전남민족문학인협의회의 정신과 적통을 이어받아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문학인 단체이다. 작가 개개인의 문학작품 창작은 물론 사회의 진보적 발전방향에 대한 고민과 또한 문화민주주의에 입각한 일반 시민들의 문화향수권 확충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에 5.18민주화운동의 의의를 되살리는 기억투쟁임과 동시에 변하는 시대상황에 맞게 새로이 해석되고 수용되는 5.18의 가치와 의미를 재해석하고 소통시켜야할 문학실천적 소명을 지니고 있다. 수년째 오월인문학이라는 이름의 5.18문화예술교육을 수행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는 광주형 평생학습 특화프로그램으로서 ‘오월인문학–한 편의 소설과 서른 편의 시로 읽는 오월이야기’와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인 ‘오월인문학–예술이 된 오월’을 진행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5.18은 풍부한 역사문화적인 스토리와 인문적인 의미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는 우리의 자긍심이면서 동시에 우리 안에 내장되어 있는 문화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기념일로 진행되는 5.18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단순한 기념일이나 의례를 거치면서 넘어가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5월의 정신가치를 현재화하여 공동체에 대한 성찰과 참여의 기회로 삼는 등의 문제의식은 사실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따라서 광주만이 지닌 5월의 역사적인 가치를 도시와 문화 그리고 개인의 내면가치로 환원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무엇보다도 참혹한 폭력 앞에서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해 주체적 자존적 행동을 보인 당시 시민들의 정신가치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존감으로 재구축하도록 해야 한다. 각박한 현실에서 쉬이 배제되고 소외되는 생활인들의 주체성 회복의 기회로 삼자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역사와 사회적인 측면에서 주로 다루어지던 5.18에 문화예술적 관점이라는 씨줄과 지적, 이성적 합목적성을 지닌 교육행위라는 날줄로 엮인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오월인문학에의 접근은 무엇보다도 ‘미적 경험’의 수행이라는 강점을 지닌다. 예컨대 미적 경험은 긴장을 완화시키고 파괴적인 충동을 잠재우며, 갈등들을 자아 안에서 해결하여 심리적 통합내지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또한 미적 경험은 지각과 식별력을 세련되게 하며 상상력을 발전시켜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한다. 그리하여 미적 경험은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세계와의 상호적인 동질감과 이해심을 함양하며 인생에 대한 이상을 제시한다.
향후 우리 사회는 풍부한 자본이나 사회적인 힘 또는 개인적 지식의 총량에 기댄 개인의 삶보다는, 공동체적 윤리를 성찰적으로 내면화하면서 정의로운 문화예술적 감성구조로 형성된 개인의 삶이 훨씬 행복한 미래가 되리라 예상된다. 그러한 점에서 오월을 노래하는 문화예술의 몫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오월인문학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마지막 결실을 덧붙이기로 하자. 오월인문학을 처음 주창한 조진태 시인이 내세운 화두이기도 하다.
- 박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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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지역문예운동가로서, 한국방송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조선대와 목포대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거치면서 문화예술교육을 전공하였다.
현재 농어촌도서지역의 문화예술교육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다도해문화예술교육원과 전문 문학인들의 모임인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최근 오월인문학 관련 문화예술교육의 주관 및 진행을 맡아 그 가치와 흥미에 취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시집 『철도원 일기』, 『기차 아래 사랑법』을 비롯하여 『무안일로지역 주민생애사』 등의 현장연구서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