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돌씨 목소리Ⅱ “화요일을 기다리는 마음” 광주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유화수채화’ 과정 엄지현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우리 아무도 없는 척하고, 문 꽉 잡고 열어주지 말까요?”
  “에고...... 실패다.”

  재빠르게 문을 잡아당기지 못해 강의실 문이 열리고 말았다. 어린 학생들이 하는 놀이가 아니다. 유화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수강생들은 누구나 사춘기를 보내는 청소년처럼 감정의 무장 해제를 경험한다.

  “선생님, 이 그림 더 이상 손을 못 대겠어요.”라는 말을 던지면, “붓을 대야지, 손을 대면 안 돼요.”라는 말이 이구동성으로 뒤따른다. 어느덧 선생님의 말투를 따라하고 있는 우리들. 강의실 분위기 메이커는 당연 우리의 문명호 선생님이시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이어지는 선생님과 우리들의 대화는 매주 화요일을 기다리게 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함박눈이 내린 겨울에도 빈자리 없이 채워지는 까닭은 선생님의 재치 있는 교수법과 그에 호응하는 수강생들의 풍부한 감성 때문이다. 내가 처음 광주여대 평생교육원을 찾았던 때는 서른아홉이었다. 흔히 ‘아홉수’라고 하던가? 서른아홉이 되도록 뭐 하나 내놓을 것 하나 없는, ‘나’라는 존재는 그저 아이들의 엄마일 뿐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에서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은데서 오는 권태로움이 유화교실을 찾게 했다. 다른 강의도 많지만, 굳이 유화 교실을 찾게 된 데에는 어릴적의 ‘토란 잎 위의 이슬’을 꼭 그려 보겠다는 작은 꿈이 한 몫 했다.

그 후로 10여년 시간이 흘렀다.

  선긋기부터 시작된 그림과의 만남. 유화 물감을 처음 접하고 선생님의 붓질 한 번에 마법처럼 멋짐에 멋짐을 더한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난 언제쯤 선생님처럼 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마다 선생님께서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자기가 그린 그림은 못 그린 그림처럼 느껴지지요. 왜냐하면 그림을 그릴수록 그림 보는 눈은 더 높아져 가기 때문이에요.“라고 말씀해주셨다.

  1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 사이 그림을 통해서 ‘나’를 발견해 가고 있었다. 서른아홉에 느꼈던 ‘존재감 상실’을 마흔아홉에도 또 겪었지만, 그것은 그림을 향한 내 마음처럼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높아졌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세상살이를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도 나는 그 나이에 느껴야 할 고민들을 여전히 하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부터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서 ‘노년’에 관한 주제의 책을 소개했다. 책의 내용은 은퇴 후 그 많은 여가 시간을 걱정해야 하는 노년의 삶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어느새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 들어 가고 있다. 책에서처럼 ‘무시무 시한 여가 시간’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에 직면한 것이다. 노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는 ‘늙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늙는 방법을 배우다니?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늙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잘 늙기 위한 준비는 꼭 필요하다.

  내가 처음 평생교육원을 찾았을 때만 해도 난 늙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 보다는 나의 청년기에 대한 후회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컸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잘 늙기 위하여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화요일의 만남’은 나의 미래 준비에 큰 활력이다.

  좋은 사람들과 감성을 공유하며, 미래를 위한 배움에 참여하는 것. 앞으로도 나의 배움 이야기는 평생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