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평생교육史 여성을 사회로 이끌다광주YWCA 성장 100년 박남순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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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사회참여와 지도력

1922년 광주YWCA(이하 광주Y)가 창설됐다. 이제 광주Y는 여성의 사회화를 이끌면서 어느덧 한 세기를 눈앞에 둔 역사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일제 식민통치, 해방, 군사정권, 민주화로 이어지는 시대 상황 속에서 여성이 직면한 현실은 불을 보듯 훤했다. 최근에는 법적인, 제도적인 관점에서 성차별은 많이 완화되어 양성평등이 실현된 시대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오늘도 완전한 양성평등사회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100년이라는 세월을 여성들과 함께 하면서 성장해 온 광주Y의 역사에서 여성의 지도력 육성 등 남녀차별 없는 사회참여를 위한 여성활동은 간과할 수 없다. 그 중심에는 광주Y를 실질적으로 이끌면서 한 평생을 광주Y와 함께 했던 고(故) 조아라 광주Y 명예회장의 지도력과 발자취가 튼실한 기둥으로 박혀 있다.

한국전쟁은 전쟁고아를 양산했다. 광주Y 운영도 여의치 않은 시절, 조아라는 광주Y 간판을 보고 찾아드는 이들 전쟁고아를 외면하지 못한다. 이때부터 광주Y는 가난해도 참되게 살자고 이름도 성빈여사로 지어 중학교 입학 연령 여자아이들의 기숙사로 만들어 아이들을 보호하면서 학교교육도 시켰다. 3년제 야간중학으로 피난민 전쟁고아를 무료로 가르치는 호남여숙, 가난을 피해 시골에서 올라와 방황하는 애들을 대상으로 별빛학원을 세워 한글을 깨치는 교육공동체 역할도 감당했다. 광주Y는 1960년대 전라남도로부터 윤락여성구호사업을 위탁해 계명여사(啓明女舍)를 설립한다. 계명여사는 타락한 1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정서순화, 직업기술습득 등으로 자립터전을 제공함으로써 윤락의 길로 빠졌던 빈민여성에게 직업기술을 교육하는 재활공동체로 자리매김했다. 약자인 여성 앞에 당면한 문제를 찾아내고 이를 바로잡아 나가면서 그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길잡이가 된 광주Y는 광주·전남 여성들의 권익신장을 위해 급진적 개혁보다는 점진적 변화에 목표를 두고 여성운동, 소비자 권익보호, 지역주의 및 공동체 운동, 인권운동 등 새로운 가치와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사회·문화적 교육공동체로 점차 활동영역을 확대한다.

광주의 어머니, 조아라

여기서 광주Y 태동부터 실질적인 역할을 한 조아라 광주Y 명예회장의 행보가 중요하다. ‘위대한 광주의 어머니’로 칭송되는 조 회장의 지도력과 발자취를 빼놓고는 광주Y는 존재 자체도, 성장도 거론할 수 없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100년 역사를 향해가는 오늘 광주Y의 역사, 나아가 광주여성의 역사를 더듬을 때 그의 무게는 심대하다. 1970년대 대의동 광주Y 회관은 광주여성운동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양심수 석방과 옥바라지에 전력하는 인권관련 교육 및 기도회, 민중논단, 반 유신행사와 모임 등 유신정권에 맞서 싸우는 재야단체와 시민들의 공회당 역할을 했다. 바로 이 대의동 Y회관은 5·18을 맞으면서 조직적인 여성활동의 근거지가 됐다. 당시 광주Y 회장인 조아라는 “광주Y 회관은 우리나라 역사를 다 지켜보고 겪었다”고 강조했다.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에서 질곡과 고난의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 집에서 살림만 하던 어머니를 비롯한 광주Y 회원들 모두 민중운동이라는 틀 속에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투사가 되는, 위대한 어머니의 힘을 발현한다. 모두 조아라의 소신과 지도력에서 비롯된 힘이다.

생을 마칠 때까지 그의 행보는 여성문제의 범주에 머물지 않고 범사회적인 문제, 나아가 민주화운동으로 시야를 넓혔다. 한국전쟁에서 부모 잃은 아이를 키우고, 생계를 위협받아 불우한 여성을 돌보고, 가난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던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등 남들이 엄두도 못내는 일들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솔선해서 도맡아 했다. 인간애를 바탕으로 이 땅에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그의 소신을 YWCA 정신 속에서 몸소 실천한 조아라는 2003년 노환으로 별세했다. 광주Y는 그의 숭고한 삶과 뜻을 후손에 전달하고 영원히 기리기 위해 조아라기념사업회를 만들고 2015년 광주 양림동에 소심당(素心堂) 조아라기념관(소심당은 조아라의 호)을 개관했다. 조아라기념사업회는 기념관에 그의 유물 및 기록물을 전시하고, 양성평등 및 지도력 육성 등 조아라 정신 계승사업을 펼치고 있다.

사회 속으로 한걸음 더

광주Y는 지방 최초로 1960년대 가정법률상담소를 개소해 무지와 가난으로 법적인 보호에서도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들의 권익보호에 나섰다. 이후 가정폭력상담소, 가정상담센터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가정폭력 및 무료법률상담 등 피해여성 보호와 건전한 가정·사회유지 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광주Y는 1970년대 소비자보호운동을 주도하여 소비자의 힘을 확인시켰다. 조아라는 ‘소비자운동은 인권운동이다’라는 차원에서 소비자보호운동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소비자보호위원회를 결성해 범시민 사회운동체로 조직을 확대했다. 여성들의 직업훈련교육전문기관으로 ‘일하는 여성의 집’을 만들어 직업훈련과 함께 여성들에게 사회참여 의식도 일깨우는 교육도 담당했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광주Y는 여성의 힘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세력으로 발휘될 때 그 지역사회 또한 지역공동체, 민주공동체로 변화되는 모습을 회원활동을 통해 보여준다. 광주Y는 여성해방, 여성 권리찾기 등 여성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회원 교육운동 조직이지만 이제 100년 역사를 앞에 두고 여성문제를 초월해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범시민운동, 사회운동 공동체를 지향한다. 헌신적인 생활태도, 희생과 포용력, 인내심, 나눔의 생활 실천을 목표로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공동체 정신을 배양하는 단체로 거듭나는 것을 비전으로 내세운다.

박남순
박남순 언론인
이화여자대학교 시청각교육과 졸업
목포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 석사)
한국예술종합학교 문화예술관광정책 CEO(최고경영자)과정 졸업
전남일보 기자 역임
해남신문 편집국장 역임
광주북구건강가정지원센터장(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