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돌씨 인터뷰 등단 56주년황석영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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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작가를 만나기 위해 모인 인파로 전남대학교 인문대 3호관 소강당이 북적인다. 지난 11월 1일은 ‘함께하는 인문학’ 프로그램 중 <가을밤에 소설을 읽다>의 첫 강연이 시작된 날이다. 앞서 지난 9월 20일부터 5주간은 <가을밤에 시를 듣다>의 강연이 다섯 차례 200명 이상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이루어졌었다. 이 프로그램은 섬세한 감성으로 창작한 시와 소설을 통해 인문학적 지식을 통찰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문 교양에 관한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마련된 자리이다.

빛고을 시민대학 지원사업-함께하는 인문학

이번 특강은 지역 내 대학을 중심으로 공모한 ‘빛고을 시민대학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으며, 광주평생교육진흥원과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단(CORE)에서 공동으로 주최하였다.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한 수준 높은 인문학 무료강좌가 개설된다는 소식에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부터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광주시민들이 강연을 듣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삶 자체가 대하소설인 작가 황석영

작가 황석영은 격동의 세월을 통과하며 살아왔다. 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해방 후 귀국하였으나 그 후 한국전쟁, 베트남 참전, 그리고 4․19 혁명과 5․18을 겪었다. 1989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초청으로 방북하여 평양에서 김일성과 만났다. 이후 독일 베를린에 체류하다가 귀국한 1993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기도 하였다. 혹자는 역사의 산증인이자 뛰어난 예술가이기도 한 그의 작품이 곧 한국 현대사가 지나온 흔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가을밤에 소설을 읽다-평화 시대의 한국 문학

이번 특강을 통해 그는 ‘평화 시대의 한국 문학’을 주제로, 광주시민들에게 격동하는 우리 사회에서 문학이 짊어진 역사적 사명과 책임에 대해 묵직하면서도 덤덤하게 이야기하였다. 특히 광주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그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통해 5․18 광주항쟁의 참상을 세상에 알렸다. 이 날 그는 광주가 민중을 일깨웠음을 강조하였다. 외세나 북한이 그 전까지는 절대 성역으로 여겨졌으나 5․18 광주항쟁을 계기로 뛰어넘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차원에서 5․18 광주항쟁은 시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가 반국민, 반민족적 폭력집단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외세가 개입하여 분단체제를 조정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5․18 광주항쟁이 전 민국에 대한 각성의 계기로 작용하였다면서, 분단을 극복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강연 말미에 그는 국민과 시민의 개념을 재정의하며 진한 여운을 남겼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국민’이라는 단어는 황국신민의 줄임말이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의 잔재인 그 단어를 개인적으로 싫어한다고 언급하였다. 그 대신 ‘시민(citizen)’은 근대적 의미에서 ‘각성한, 공동체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하였다. 역사적으로는 그리스-로마의 시민, 소크라테스와 시저가 호소한 대상으로서의 시민을 말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진정한 시민에게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변화를 추구하고 요구할 권리와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촛불 혁명이 지니는 의미를 되새겼다. 시민대학 역시 이러한 정의의 연장선에 놓여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함께하는 인문학’ 프로그램 중 <가을밤에 소설을 읽다>의 강연은 11월 1일 황석영 작가의 강연을 시작으로 5주간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인문대 3호관 소강당에서 진행된다. 10주간의 여정으로 이루어지는 ‘함께하는 인문학’ 강좌는 동영상으로 제작되어 유튜브를 통해 업로드 예정이라고 하니 관심 있는 시민들은 추후에 검색하여 이용하기 바란다.

일문일답
황석영 작가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누가 이렇게 물으면 한 마디로 심플하게 대답할 수 있다. ‘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 (웃음) 그래도 섭섭한데 뭐 없느냐 하고 또 물어보면 나는 또 심플하게 대답한다. ‘글은 궁둥이로 쓴다.’ 즉 오랜 시간 앉아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글 쓰는 행위는 몸이 하는 행위이지 정신적 행위라고 하는 것은 어림없는 소리이다. 대개 삼류작가가 글을 쓰면 원고지를 구기면서 괴로워한다거나 천둥벼락처럼 inspiration이 내리꽂혀서 쓴다거나 하는데 사실상 그런 것은 없다. 글 쓰는 것은 무한히 지루한 작업, 몸이 하는 노동이다. 글 쓰는 데 대한 신비감이나 환상은 갖지 말아야 한다. 대개 늙은 작가들이 대하소설 같은 것을 내놓으면서 그런 전설과 신화를 퍼트리는데 절대 넘어가서는 안 된다. (웃음) 여러분들이 사무실 나가서 일 할 때 느끼는 지루함과 똑같이 지루한 작업이다. 그렇게 지루한 시간을 견디고 또 추구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인생 자체가 대하소설이셨는데 작가님의 파란만장한 삶을 작품에 담으시는 것 같았다. 항상 소설의 마무리는 해피엔딩이었던 것 같은데 그것을 유지할 수 있었던 작가님만의 가치관이 있다면?

인생에 해피엔딩은 없다. 생은 그저 지속되는 것이다. 그런데 열려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열려있으니까. ‘아, 조금만 더 좋은 작품 썼으면 좋겠다.’ 그동안 내가 쓴 작품 중 몇 편이나 건질 수 있냐고 물으면 전반기 20년은 제외하고 후반기에 10편 정도 장편 소설을 썼는데 그중에 한 세 편 정도? 맘에 안 든다. 양에 차지 않는다. ‘늘 양에 찬 글을 쓰겠다, 쓰겠다.’ 그러면서 가는 거고 그러니까 그걸로 견딘 거다. 지금도 그렇고.

저희 기관이 평생교육진흥원이다 보니 인생 2막을 여는 장년층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인생 선배로서 이런 분들이 건강한 삶을 사는데 필요한 조언을 해준다면?

우스개처럼 얘기한다면 이거 일본에서는 꽤 됐다. 한 20년 됐나? 머릿속으로 생각해보라. 지금 수명이 늘어서 현재 나이에 0.7을 곱해야 옛날 나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난 어떻게 되는가? 76 곱하기 0.7을 하면 50대 초반이다.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가지면 지금 60살이시다 라고 했을 때 0.7을 곱하면 40대 초반이 아닌가. 그렇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지금 옛날보다 시간이 배로 늘어났다. 자신이 못 해봤던 걸 그만큼 시도할 수 있으니까. 소설을 써도 된다.

시민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다양한 책을 찾아 읽고 있다. 작가님께서 특별히 추천하시는 책이 있다면?

요새 일하는 중이라 남의 소설을 읽을 시간이 없었는데... (웃음) 요즘 젊은 사람들이 고전을 못 본다. 고전을 읽으라고 말해주면 ‘아 그거 좋겠습니다.’라고 대답은 하는데 숙제를 내주면 소식이 없다. 후배 아들한테 숙제를 한 번 내준 적이 있다. 윌리엄 포크너를 읽고 토론을 해보자. 윌리엄 포크너는 미국 남부의 작은 고향 마을에서 자신이 만든 ‘요크나파토파’라는 가상세계를 하나 만들어서 캐릭터, 사건을 다 만들었다. 그런 것처럼 익산을 재창조해서 너의 문학세계가 이루어낸 새로운 소도시를 구상해보라. 그런데 재미가 없어서 안 읽힌다고 한다. 그래도 읽어야지. 돈키호테 줄거리는 다들 아실 텐데 원본은 내용이 전혀 다르다. 이렇게 두꺼운 두 권인데 처음에는 지루하지만 읽다가 중간쯤 넘어가니까 너무 재미있다. 특히 그 당시의 서술방법이니 사람의 심리가 굉장히 재미있다. 이런 가을에는 고전을 하나씩 정해서 좀 지루하다고 생각해도 공부하듯이 읽어서 한 권씩 떼면 정말 좋을 것이다.

등단하신 지 56년째가 되신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인터뷰에서 “앞으로 10년은 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발언을 계속할 생각이다.”라고 하셨는데 어떤 말씀을 앞으로 해주실 생각인가?

발언이라는 표현은 기록이 잘못된 것 같다. 발언이라기보다는 앞으로 10년 글을 더 쓰겠다는 것이다. 발언이야 뭐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고 못마땅하면 소리를 빽~ 지를 수도 있는 거고 그런 거다. (웃음) 발언은 죽을 때까지 하는데 글 쓰는 것은 10년 후까지 하겠다. 10년이면, 여든여섯이면 집필연령으로는 장수하는 것이다. 10년이면 장편 한 세 편이면 많이 쓰는 것이다. 지금 한 편 이미 시작했고 두 개 더 쓰면 된다. 그건 별 것 아니다.

곽유미
광주평생교육진흥원 기획연구실장
황석영 소설가
1943년 만주 장춘 출생.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61년 전국고교문예 현상공모에서 《출옥일》로 입선하였고 이듬해 11월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입석부근》이 당선되었다.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탑》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70년부터 《돌아온 사람》, 《객지》, 《삼포가는 길》 등의 중단편을 발표하여 리얼리즘 미학의 한 획을 그었으며, 1974년 7월부터 1984년 7월까지 한국일보에 대하소설 《장길산》을 연재하였다. 그 외에도 《무기의 그늘》,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 별》, 《강남몽》 등을 집필하였고 지난 해에는 자전에세이 《수인》을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