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시민교육의 사명을 평생교육의 이름으로
오늘날 민주시민교육의 지침서로 일컬어지고 있는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은 1976년에 정립된 것이지만, 그것의 역사는 수백 년 전 근대민주주의가 시작된 즈음으로 거슬러간다. 1997년 제5차 국제회의에서 유네스코가 평생교육의 이념을 민주주의로 천명하고 있듯이 이 협약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주권재민사상에 기초하여 ① 강압적인 교화교육 또는 주입식 교육을 금지하고(주입식 교육의 금지), ② 학교의 수업내용과 방식에 있어서 실제사회와 같은 논쟁적인 상황을 학습하고(논쟁의 투명성), ③ 모든 수업참여자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실천적 능력을 강화하는 것(수요자 지향성)을 지향한다.
한편 우리나라 학교교육은 소위 명문대학교에 입학하여 남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국민적 강박증에 편승하여 제대로 된 민주시민교육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바로 잡겠다는 취지에서 1987년 민주화이후 소위 민주시민교육지원법안이 제기되었으나, 정치권의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현행 평생교육법의 시민참여교육이 이 부분에 미진한 학교교육을 보충하고 있을 뿐이다. 이 제도는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로 하여금 ‘서대문형무소’와 ‘제주4.3평화공원’을 견학하는 체험학습과정에서 민주시민교육 효과를 일면 엿볼 수 있다. 특히 이런 점에서 광주광역시는 민주ㆍ인권ㆍ평화이념의 산 교육장이 타 도시에 비해 현저하게 많기 때문에 교육적/산업적 가치가 충분하다.
우리나라 민주시민교육의 성지로서 광주의 발전 가능성
우리나라 시민참여분야는 평생교육법 제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규교육과정 이외의 주요 프로그램 중 직업능력향상, 인문교양, 문화예술에 비해 그 참여도가 압도적으로 낮은 상태에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전국통계에서 시민참여분야는 직업능력보다 1/22, 문화예술보다 1/19.7, 인문학보다 1/10.6의 비율로 참여도가 낮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광주시의 경우는 문화예술보다 1/2.73, 직업능력보다 1/1.48, 인문학보다 1/1.19배 낮은 정도이어서 위 전국 평균치보다 무려 8배가 많은 참여도를 보이고 있다. 즉 이 사실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서 보듯이 광주시민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저항의식을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1929년 이 지역에서 발생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체가 학생들이었다는 점에서 이 도시가 평생교육법이 지향하는 근원적 민주시민교육의 발전가능성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의 수많은 사적지들이 신자유주의적 경제논리에 의해 생산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02년 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공약으로 건립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구 전남도청 건물을 보존함으로써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자원을 이 지역으로 분산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건립되었으나, 원래 의도했던 만큼 성황을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마도 세계적인 문화와 예술교류의 장을 만들겠다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추진방법과 양상이 교통 인프라와 홍보부족 그리고 지역민들의 정서와 부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옛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인근 조선대학교와 양림동 등 사적지 건물들의 원형보존과 복원체계가 체계적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더하여 정의로운 광주정신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민주시민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하며, 그것은 지역학적 맥락에서라도 이 지역 평생교육이 떠맡고 있는 사명이자 풍요로운 도시건설의 지름길이다. 왜냐하면 광주는 정의와 풍요가 일치하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민주주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광주정신을 체험과 실천형 민주시민교육방법으로
2018년은 정의와 풍요를 동시에 추구하는 광주의 민주시민교육이 평생교육으로서 이제 걸음마를 딛는 해이다. 그런데,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구태의연하고, 졸속한 교육방법은 촛불집회의 민주화 열기로 오랜만에 얻은 기회를 잃게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앞서 있다는 서울식 평생교육정책인 ‘자유시민대학’은 역시 최초로 ‘민주시민교육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시행하고 있지만, 유독 민주시민교육만은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열악하며, 그 방법도 이론적인 경우가 허다하다. 만약에 서울시가 국내 인구와 자본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러한 교육방법은 이미 실패했을 것이다.
그것에 비해 광주는 상대적으로 훨씬 빈약한 인적/경제적 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몸소 경험했던 민주화운동의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체험과 실천을 강조한 교육방법을 채택한다면 서울보다도 더 발전된 민주시민교육을 행할 수 있다. 그 예들은 인물들에 대한 학습, 역할극과 정치 시뮬레이션, 영화 등 예술작품을 이용한 인문학적 시도, 옛 도청 등 5.18사적지에서의 현장체험, 견학과 자원봉사활동, 멘토링과 동아리를 이용한 실천적 학습 등이다. 또한 이와 같은 다양한 교육을 항구적으로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은 1. 광주시 민주시민교육 조례의 제정, 2. 광주시민대학 운영을 위한 종합계획의 수립, 3. 5.18기념재단의 사업과의 연계, 4. 유능한 시민교육 기획자와 강사 양성 프로그램 개발/실시, 5. 관내 중ㆍ고등학생들에 대한 비교과적 교육, 6. 민주시민교육의 표준화를 통한 인증제도 수립 등을 생각할 수 있다.
노벨문학상 작가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에 기초한 1990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무지한 소년들의 광란은 영국 해병대원의 등장으로 단번에 종료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이러한 방식으로 무소불위의 공권력만이 무정부상태를 지배한다는 리얼리즘 사고가 팽배했다. 하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는 그 힘이 부당하다면 처절하게 항거할 수 있는 용기와 희생정신에 의존한다. 광주시민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어느 지역보다 더 많은 저항운동을 펼쳐왔다. 광주평생교육은 이 훌륭한 광주정신을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반드시 정립해야 하며, 우리 교육자들은 그 만큼 통철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 김재형 조선대 민주평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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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학교 대학원 법학박사
조선대학교 법학과 교수
미국 Emory Univ. School of Law 객원교수
조선대학교 민주평화연구원장 및 역사관장
광주광역시 민주화운동기념 및 정신계승위원회 위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옛도청등 복원 기본계획수립 총괄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