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작품에 욕심이 많습니다.
하필 그 당시 광주에 와서 가책을 느꼈습니다. 광주의 피에 대해 작가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이라는 장애물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작가는 금기가 되는 것을 깨고 같이 누려야 합니다. 또 하나의 자아인 북한을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밋밋합니다.
지금도 무슨 일인가를 만들고 싶습니다.”
전남대 인문대학(학장 김양현)과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단(CORE)이 주최하는 11월 ‘함께하는 인문학’ 강의에 황석영 작가가 연사로 나섰다. 11월 1일 오후 7시30분 인문대 3호관 소강당에서 열린 ‘가을밤에 소설을 읽다’ 인문학 강연 첫 강의로 황석영 작가의 강연이 펼쳐진다는 소식에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황석영 작가는 ‘평화시대의 한국 문학’을 주제로, 격동하는 우리 사회에서 문학이 짊어진 역사적 사명과 함께 소설 쓰기의 어려움, 소설가의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19세 젊은 나이에 등단한 그는 소설 '탑'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56년 작가 생활 동안 개밥바라기별, 삼포 가는 길, 오래된 정원 등 무수한 인기 작품을 발표했으며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올해의 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톨스토이는 만년에 가출했다가 이틀 만에 사망했어요. 프랑스 소설가 에밀 아자르인지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리볼버를 서랍에 넣어뒀다가 글쓰기가 힘들어지자 총을 꺼내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겼지요. 헤밍웨이는 쿠바에서 낚시를 하다 샷건을 입에 물고 포크로 방아쇠를 당겨 최후를 맞았어요” 황석영 작가는 소설 쓰기의 어려움부터 역대 예술가들의 비참한 최후를 이야기하며 ‘현장에서 끝까지 자기를 걸고 글을 쓰는 자가 진짜 작가’라고 진지하게 운을 뗐다. 더불어 ‘작가는 죽을 때까지 과거와 다른 작품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황석영 작가는 평양을 방문했을 때 겪었던 한 철도원의 삶을 그린 작품을 집필 중이다. 서장 부분만 석 달을 붙잡고 11번 고쳐 쓰는 중이라고 토로한 작가는 “글 쓰는 일은 몸이 하는 것이다. 보이는 화려함과 달리 무한한 지루함의 작업이다. 이를 견디면서 새로운 길로 나가는 것이다”라며 작가의 생활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전달했다.
“등단 후 19살 때 제가 신인상을 받았어요. 하지만 재주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익산의 원불교 수련원에서 지내며 장편 소설을 쓰고 있어요. 작년 ‘수인’이라는 자서전을 쓰고 나니 너무 허전했어요. 글 쓴 지 56년이나 되었으니 이젠 구렁이가 되었지요. 하지만, 자꾸 막히는 것 같아요. 만년 문학이라는 것은 치매의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잠시 자신의 문학에 끝이 찾아온 것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한때 예술학과가 필요 없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되기도 한 황석영 작가는 얼마 전 국어교사 모임 강연에서 자신의 작품 ’삼포 가는 길‘ 출제 문제를 테스트해 보니 40점이 나왔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서로 다르더라도 논리가 서 있으면 좋은 글입니다. 답이 정해진 것은 입시를 위한 교육 아닌가요? 소설을 쓰는 데는 기술이 필요하지 않으며, 문학교육은 정답이 없습니다”라는 뼈있는 이야기에 청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어 고등학교 중퇴에도 훌륭한 작곡가로 성장한 아들과 출판사에 다니면서 몰래 쓴 소설이 당선돼 최근 라이벌 작가가 된 딸 이야기는 꿈을 향한 용기와 자신감이 성공의 비결임을 새삼 느끼게 했다.
또한, 평화시대 문학을 이야기하던 중 고 김남주 시인이 운동권 시절 잡혀가 겪은 일화를 들려주어 잠시 강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강의 후 추천도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가을에는 고전을 읽으라’는 이야기와 함께 자신의 작품 ‘오래된 정원’에 대한 이야기도 슬그머니 꺼내 놓았다.
“나는 내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내 주변 이야기를 썼습니다. 오래된 정원은 15년 만에 완성한 작품입니다. 전 이 작품을 쓰면서 작가로 돌아왔습니다. 독자들은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다고 합니다”라며 특별히 애정하는 작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역사의 산증인이자 뛰어난 예술가로 불리는 황석영 작가의 특강은 깊어가는 가을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더불어 시민의식에 대해서도 강조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저는 국민이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대신 시민이라는 단어를 쓰죠. 국민은 황국신민이라는 뜻으로 일본이 만든 말입니다. 제가 자주 이야기하는 시민은 ‘각성된 개인’을 이야기합니다. 줏대 있는 시민이 대한민국에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전남대 인문대학과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단(CORE)은 11월 1일부터 5주간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인문대 3호관 소강당에서 ‘함께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강좌는 인문학에 대한 시민들의 폭넓은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분단시대를 극복해가는 한국사회의 현실에서부터 시작해 환경과 생태, 에로티시즘과 심미주의, 역사적 격변기의 작가 루쉰 등 시의성 있는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60분 강의와 30분 토론형식으로 진행되는 강좌는 ▲황석영 소설가의 ‘평화 시대의 한국 문학’ ▲강규한 교수(국민대 영문학부)의 ‘환경, 동물 그리고 아동문학’ ▲나희경 교수(전남대 영문과)의 ‘롤리타, 에로티시즘으로 위장한 심미주의’ ▲이주노 교수(전남대 중문과)의 ‘루쉰의 삶과 작품 세계’ ▲이미란 교수(전남대 국문과)의 ‘소설 한 편 써보기’ 등으로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있다. 강의는 무료이다.
전남대 인문대학과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단(CORE) 문의 : 062-530-4080
- 박현숙
- 제2기 광주평생교육 웹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