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돌씨 목소리Ⅰ 소리 없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언어 ‘수어’ 기광숙 | 광주광역시 수어통역센터 수어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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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는 인구 1,469,000명 중 9,000명의 청각․언어장애인(이하 농인)이 있고 두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2급 이상 중증장애인이 1,700명 이상이다. (*2016년 12월 광주광역시 통계자료) 이들의 복지 향상과 사회참여를 돕고자 농아인협회에서는 광주광역시로부터 수어통역센터(이하 센터)를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고 센터에는 김상완 센터장을 포함하여 21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 중 청인 통역사 13명이 광주에서 일어나는 농인들의 일상생활, 법원, 관공서, 학교, 병원, 금융, 구직, 각종행사의 통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광주시 인근지역 농인들이 광주소재(대학)병원이나 행정기관 등을 이용할 경우 광주센터에서 통역을 지원하기도 한다.
농인들은 겉모습은 똑같아서 대화를 하지 않으면 알기 쉽지 않아 장애로부터 또 한 번의 소외를 받는다. 광주에는 각 구마다 장애인복지관이 있고 시각장애인복지관도 있지만 아직 농인을 위한 농아인복지관과 수어교육원이 없다. 그래서 가족과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집안에만 있기에 답답하여 통역이 없어도 수어로 맘껏 속마음을 털어놓고 대화할 수 있는 농아인협회를 자주 찾는다. 그래서 농아인협회는 농인들의 쉼터요, 사랑방이자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상담소역할을 한다.
나는 광산구수어통역센터에서 근무를 하다가 2014년 5개 구에 있던 수어통역센터가 통합되면서 수어교육부에서 수어교육과 농인들을 위한 평생교육 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2017년에는 수어학당과 함께 한국장애인재단 지원으로 농인여성의 역량강화를 위한 문화아카데미사업과 호남대학교 교수님들의 재능기부로 인문학 강좌를 운영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한 교육실과 수어통역사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수어교육을 할 때는 동시에 초급, 중급, 고급과정이 열리기도 하는데 교육실이 부족하여 농인들의 사랑방이며 유일한 쉼터인 휴게실까지 차지하여 사용했고 농인들의 체력증진교실 프로그램 수업을 해야 하는데 긴급한 통역이 발생하면 수어통역 없이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현 시대는 배우고자하는 욕구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농인들에게는 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으면 이 또한 배울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비수어통역사학교를 평생교육프로그램사업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수어는 하나의 언어로, 단기간에 습득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최소한 1년 이상을 꾸준히 배우고 5년 이상의 훈련 과정을 거쳐야 수어통역사가 될 수 있다. 또한 예비수어통역사학교는 농인강사가 교육하기에 어느 정도 수어에 대한 기초가 있어야만 한다. 대상자들은 고급과정까지 마치고 동아리활동을 하는 사람부터 중급과정을 배우고 있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그동안 초급 이상을 수강하고 계속 배우고자 희망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3개 반으로 나누어 교육을 실시했다. 저녁에 수강이 어려운 주부들을 위한 주간반과 직장인과 학생을 위한 야간반과 주말(토요)반을 개설했다. 교육과정에는 광주정신과 5.18정신에 대한 교육을 포함시켜 광주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함양하고 타 시․도민들에게 수어로 광주를 알릴 수 있는 홍보대사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했다.

예비수어통역사과정을 수강하는 주 대상은 고등학생, 대학생, 취업준비생, 경찰, 공무원, 재취업을 꿈꾸는 전업주부, 봉사를 위해 배우는 분 등 다양하다. 커피숍에 가끔 오시는 농인분들과 원활히 소통하고 싶어 수어를 배우기 시작한 카페 매니저도 있고, 키즈 카페에 자녀를 데리고 온 농인부부를 만나 그동안 배운 수어로 무난하게 통역하고 자신감을 얻어 더 열심히 배우고 있는 키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도 있었다. 60명이 넘게 지원했지만 수어실력 부족, 직장 발령, 기타 이유로 중도 포기하고 49명이 수료했다.

2017년 11월 4일 구 도청 분수대 앞 광장에서는 프린지페스티벌 행사와 함께 수어캠프도 열었다. 예비수어통역사학교 교육과정 중 하나로 수어노래공연과 함께 지문자, 지숫자 배우기, 수어로 비밀편지쓰기, 수어배우고 사탕 먹기, 장애인식 개선을 위한 퀴즈풀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거리에서 수어노래 발표를 하고 사람들에게 리플릿을 나눠주는 일에 주저하지 않고 학습자들은 모두 기쁨으로 행사현장 주위에서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을 알리고 수어캠프장으로 모시고 와서 수어체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2018년에는 많은 행사들을 앞두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있고 지방선거가 있으며, 2019년에는 광주에서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개최된다. 내가 아는 새내기 대학생은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자원봉사를 신청하고 수영을 배우면서 설렘으로 대회를 기다리고 있다. 예비수어통역사학교 수료생들은 이제 지방선거와 전국농아인대회를 설렘으로 기다리고 있다. 지방선거 때는 수어통역사학교 수료생들을 각 선거투표소에 배치하여 농인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는데 불편함이 없게 할 예정이다.
또한, 오는 7월 6~7일에는 농아인의 날 기념 전국대회가 지방 최초로 아시아문화전당 일원에서 열린다.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전국에서 1,000명 이상의 농아인들이 광주로 모이게 된다. 이를 대비하여 예비수어통역사들을 꾸준히 양성하여 부족한 수어통역사를 확보하고 수어로 광주를 알리는 홍보대사가 되도록 해야 하며, 광주에서 큰 행사를 함께 한마음으로 원활히 잘 치르고 각 분야에서 수어통역사의 역할을 감당하게 함으로써 위대한 광주시민정신을 알리고 싶다.

소리없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언어 ‘수어’

2016년 2월 3일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었다. 농인들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뜻깊은 날이다. 이 법안은 한국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히고, 한국수화언어의 발전 및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여 농인과 한국수화언어사용자의 언어권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제 ‘수화’라 불리던 수어는 공식 언어로 인정받아 ‘한국수어’로 불리운다. 우리가 수어를 배우면 농인들에겐 더 이상 그들만의 언어가 아닌 국어와 동등한 또 하나의 언어가 되어 농인들이 언제 어디서나 불편함이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농인들과 더불어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